보조금 폐지하니 경쟁력 '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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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73년 뉴질랜드는 위기를 맞았다. 주력 산업인 농산물의 수출 길이 막혀 버린 것이다. 뉴질랜드 농산물을 거의 전량 수입했던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면서 이웃 유럽 국가에 농산물 시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아우성쳤다. 농민 표를 의식한 정부는 농업 보조금을 확 늘리는 조치로 농심 달래기에 나섰다. 마릿수를 기준으로 보조금이 지급되자 농민들은 양과 소를 마구 늘렸다. 시장의 수요나 품질은 관심 밖이었다. 가축 공급이 늘어나 시세가 떨어지면 정부가 나서서 가축을 수매했다. 83년 정부 보조금이 농가 소득의 35%를 차지했다. 양.소를 사육하는 농가는 소득의 절반을 보조금에 의존했다.

보조금 때문에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뉴질랜드 경제는 파탄 위기에 놓였다. 84년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바로 농업 보조금 수술에 나섰다. 직접 보조금은 1년 만에 모조리 없앴다. 간접 보조금도 3~4년의 유예기간밖에 주지 않았다.

농민들은 우선 방만하게 늘렸던 가축 수부터 줄였다. 80년대 7000만 마리에 달했던 어린 양은 2000년대 4000만 마리로 줄었다. 그럼에도 양 고기와 양모 생산량은 오히려 늘었다. 품종을 개량해 마리당 체중과 양모를 늘리고 성장 속도를 빠르게 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대사관 강경미 공보관은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농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없앴지만 오히려 농업 경쟁력이 높아졌다"며 "보조금으로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건 한계가 있다는 게 뉴질랜드가 얻은 교훈"이라고 설명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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