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2부] 즐거운 집(2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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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를 내가 엄마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었던 것은, 가끔은 춤을 추고, 가끔은 엄마는 참 행복해, 하고 말하는 엄마가 쓸쓸해 보여서였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주말을 좀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라고나 할까.

아마 내가 엄마 집으로 온 지 두 주쯤 지난 주말이었나 보다. 엄마 집의 주말은 언제나 텅 비었다. 둥빈과 제제가 각자 제 아빠들을 만나러 가고 그 토요일은 엄마와 나 둘이만 집에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친구와 만나러 나가려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엄마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어디 가?"

"응 약속 있어."

엄마는 좀 시무룩한 표정이 되더니, "너랑 먹으려고 맛있는 거 만들고 있는 참인데" 했다. "갔다 와서 먹을게" 하니까 엄마는 혼잣말처럼 "에잇, 성격들도 이상해. 같이 살 때 주말마다 애들 좀 저렇게 봐주지" 하며 내 방을 나갔다.

그날 저녁 내가 친구들과 수다를 떠느라고 좀 늦게 집에 도착하자 엄마 혼자 어둑한 집에서 TV를 틀어놓고 앉아 있었다. TV의 푸른 불빛이 아른거리는 엄마의 얼굴은 오래도록 고립된 채 살아온 노파처럼 힘이 없고 쓸쓸해 보였다. 식탁에는 엄마가 자주 하는 요리인 야채고추잡채와 닭다리구이가 손도 안 댄 채로 그대로 차려져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떡볶이를 사먹은 터라서 더 이상은 먹을 수가 없었다.

"동생들은?"

내가 묻자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다들 늦는데… 너도 밥 먹고 온 거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는 결심이라도 한 듯 끙, 하니 일어나서 식탁으로 가더니 혼자 닭다리를 잡고 먹기 시작했다. 좀 미안한 마음도 있고 엄마가 안되어 보여서 나는 엄마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일부러 먹지 마. 나중에 배고프면 먹어…."

내가 일부러 명랑한 표정으로 "맛있겠는데 뭘" 하면서 잡채를 조금 먹기 시작하자, 엄마가 먹던 닭다리를 접시에 내려놓았다.

"식탁 차려놓고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너희들 기다리는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외할머니가 예전에 우리 기다리면서 손도 안 댄 식탁 치우면서 이제 나는 혼자구나, 느꼈다고 말했던 게 생각난 거야…. 엄마가 만일 글 쓰는 일도 없었으면 오늘 같은 날 얼마나 서러울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지…. 생각해 보니까 너희들 키울 걱정만 하느라고 너희들을 보낼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던 거 같아. 참 이상하지? 예전에는 너희들이 언제 크나, 언제 커서 엄마, 엄마 안 하고 나가서 다들 알아서 살 날이 올까, 이런 생각했는데 막상 너희들이 다 떠난 것처럼 느껴지니까 힘이 다 빠져버리네."

엄마는 힘없이 먹던 닭다리를 집었다.

"예전에 너 이 집에 오기 전에 남동생들 둘만 데리고 있을 때 말이야. 주말마다 애들한테 미안했거든. 남들은 놀이공원도 가고 외식도 하러 가는데 우리 셋이만 가는 게 좀 뭣해서…. 그땐 네 동생들한테 이혼한 거 참 많이 미안했어. 동네 식당엔 왜 그렇게 아빠랑 온 아이들이 많은지…. 그래서 외식은 평일에 하고 주말엔 엄마가 특별 요리를 개발해서 만들기 시작했던 거였는데…. 에이, 뭐 이젠 그런 걱정 안 해도 되니까 좋긴 좋다."

엄마는 다시 엄마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일단 즐거운 서점 아저씨를 선보이기로 했다. 그래서 어느 날 시내로 나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동네 서점 위치를 설명해 주고 참고서 하나를 부탁했다. "집도 가까운데 네가 가지." 엄마는 투덜거리더니 그래도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한 줄 알았던지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엄마는 늦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손에는 내가 부탁한 참고서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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