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으로 뭉친 한국축구 저력 과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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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일본과의 축구는 전쟁이다.』
일본에 극적인 1-0승리를 따낸 한국 올림픽축구 대표팀의 김삼락 감독이 경기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터뜨린 첫마디다.
그만큼 이번 한일전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티킷 확보를 가름 짓는 승부이기 이전에 양국이 자존심을 건 한판승부였다.
지난60년대 일본 대표팀을 지도, 한일양국의 역사적 관계를 잘 알고 있는 크라머 총감독도 일본과의 4차 전을 앞두고는 작전·선수기용 등 전권을 김 감독에게 위임했다.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한국사람의 뿌리와 혼만 일깨워 준다면 쥐가 난다 든 가 하는 후반 체력저하 문제도 없을 것이며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 김 감독에게 일체의 권한을 양도한 크라머 총감독의 변이었다.
더욱이 이번 한일전을 앞두고 한국대표팀의 전의에 불을 지른 사건이 있었다.
한국이 1-0으로 꺾은 바레인 팀을 6-1로 대파, 기고만장한 요코하마 일본 팀 감독은 25일의 기자회견에서『일본의 올림픽본선 진출이 쉽진 않겠지만 한국팀정도야 잡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거드름을 잔뜩 부린 것.
후반전에만 들어서면 발이 굳어 버리는 한국팀을 이긴다면 84년 한일정기전에서 승리한 이래 대표팀간의 경기에서 이겨 본 적이 없는 일본으로서는 대성공이며 이것을 지켜보기 위해 일본TV방송은 이번 예선 중 처음으로 생중계를 한다고 익살까지 떨었다.
이같은 요코하마 일본감독의 발언은 그렇잖아도 성적이 예상에 못 미쳐 신경과민상태에 있는 한국팀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일본 팀에 못이기면 감독 직이고 뭐고 축구계를 떠나겠다. 무조건 이기자』는 울분에 가까운 김 감독의 작전 아닌 작전지시를 받은 한국팀은 비록 경기종료 1분30초를 남기고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 1-0의 스코어차이밖에 내지 못했지만 이때까지의 4게임 중 가장 활기찬 플레이로 세차게 일본 팀을 몰아붙여「강인한 정신력」만이 해낼 수 있는 한국축구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감독이 흥분하는 바람에 선수들은 투지는 매서웠으나 침착성을 잃고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것 같다고 이곳에 온 국내전문가들이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콸라룸푸르=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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