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제발 계산기 좀 잘 두드리고 드라마 주문 받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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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외주란 외부에 주문한다는 뜻이다. 왜 주문하고 왜 주문받는가? 돌아오는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외주제작사들과 방송사 간에 언성이 높아간다. 주문을 받으면 받을수록 손해라는 비명까지 들린다. 양측 다 서로 '너무한다'고 불만이다. '너무'는 무언가 도를 넘었을 때 내뱉는 말이다. '너무한' 일을 왜 할까.

무리한 주문이라면 애당초 받지 않는 게 도리다. 방송사 측은 친구에게 주문하는 게 아니라 업자에게 주문하는 것이다. 프로(프로그램)는 프로(프로페셔널)에게 맡겨야 한다. 꼼꼼히 손익계산서를 두드린 뒤 주문을 받아야 진정한 프로 자격이 있다. 프렌드십의 미덕은 동고동락이지만 파트너십의 요체는 역지사지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의 김승수 사무총장은 '방송사에서 받는 제작비의 절반 이상이 주연배우와 작가의 몫'이라고 말한다. 이유가 있다. 드라마의 두 가지 히트 요인은 볼거리와 줄거리다. 볼 만한 스타, 그리고 즐길 만한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가 돈을 챙긴다. 고등어가 잘 안 잡히면 고등어값이 오르는 건 당연하다. 스타를 나무랄 일이 아니다. 스타의 몸값이 오르는 건 그들이 잘 안 잡히기 때문이다. 다소 이상적인 대안이지만 고등어에 길든 입맛을 좀 바꾸도록 유도해 보는 건 어떨까.

'시장논리를 들먹이며 스타의 몸값을 부풀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한다'고 방송사 측은 비난한다. 미니시리즈 한 편의 제작비가 실제 방송사에서 지급하는 액수의 두 배라는 말도 들린다. 허탈한 주문이지만 계약할 때 좀 잘해라. 손해 볼 장사는 뛰어들지 말든지 미리 주문자를 강하게 설득해라. '드라마 제작에는 예측불가의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고 변명하는데 그렇다면 제발 예측 좀 잘해라. 스스로 하기 어렵다면 경영전문가를 고용해라. 저작권 배분 문제도 미리 철저히 따지고 조건이 안 맞으면 과감히 철수해라.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재능과 열정,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배운 대로 하자면 시간은 돈이다. 이제부터 돈만 투자하지 말고 시간을 투자해라. 이른바 장기기획을 하라는 말이다. 졸속은 재능도, 열정도 망가뜨리는 병원체다.

최종 고객인 시청자는 방송사가 자체 제작한 것인지 외주가 만든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 끝에 제작사 이름이 올라갈 즈음엔 이미 채널을 배반한 후다. 시청자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며 이 쇼를 즐기면 될까? 아니다. 이때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을 상기해야 한다. 고래들이 싸울 때 저 멀리 피하지만 말고 새우들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고래가 화해하도록 돕기보다 인터넷이든 방송위원회든 가동할 기재는 총동원해 고래들이 반성하도록 따끔하게 질책하는 게 좋을 것이다. 수학에서 배운 은밀한 교훈은 어떤 어려운 문제에도 해답이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고 고함만 지른다면 세상은 시끄러워지고 문제는 오히려 꼬여만 갈 것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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