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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세계 디자인 수도'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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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금 세계 디자인계는 소리 없는 전쟁 중이다. 세계 디자인 수도(World Design Capital:WDC)를 선정하는 국제 공모 경쟁이 점점 가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디자인연합이 격년제로 주최하는 이 공모행사는 세계적으로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사회.문화.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고 있는 도시를 선정해 2년간 WDC로 지정한다. 2006년 겨울올림픽을 개최한 토리노가 '2008 시범 WDC'로 뽑혔으며, 올해는 2010년 WDC를 선정한다. 따라서 이번에 선정되는 도시는 '시범'이란 수식어가 없는 명실공히 첫 번째 WDC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럽의 도시들은 물론 미주.아시아의 도시들도 WDC가 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세계적으로 21세기 경쟁력의 원천인 창의성.혁신의 중심지로 공인돼 도시는 물론 국가 이미지가 획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디자인 중심 문화가 도시 전체로 확산돼 시민들의 자긍심이 고취되며, 다른 도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줘 디자인산업 전반이 성장할 수 있다. 또한 국제적인 디자인 네트워크의 중심지로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고, 창의적인 인재와 투자자들을 끌어 모아 디자인 역량을 높일 수 있다.

이에 따라 많은 도시가 공모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며, 선정 절차도 엄정하게 이뤄지고 있다. 공모 참여 도시들은 이달 16일까지 제안서를 WDC 조직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조직위는 제안서를 심사해 6월 중 3개 도시를 선정하고, 9월 중 현장 실사를 통해 최종 후보 도시를 선정하게 된다. 그리고 10월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세계 산업디자인단체 협의회 총회에서 발표된다.

서울이 WDC로 선정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3개 도시를 뽑는 예선은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서울은 세계 디자인계의 대표적인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실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세계 그래픽 디자인대회, 2001년 세계 산업디자인대회에 이어 2003년부터 격년제로 열리는 디자인코리아 행사는 우리 디자인의 국제적인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또한 서울특별시의 유치 의지가 매우 높다.

문제는 어떻게 설득력 있는 제안서를 작성하느냐는 것인데, 서울은 세계의 어떤 도시들보다 훌륭한 콘텐트를 많이 갖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 될 것이다. 백제의 고도(古都)였던 서울은 600여 년 전 조선의 수도로 제정될 때부터 철저하게 디자인된 도시라는 사실과 정보시대를 앞서가는 디지털 디자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 등 강점이 많다.

물론 현재 서울의 전반적인 디자인 수준을 세계적인 도시들과 비교해 보면 다소 떨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디자인계가 WDC를 선정하는 정신이 과거 실적에 연연하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비전과 실현 가능성에 비중을 둔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급한 것은 서울 시민들이 WDC 유치의 의의와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도록 널리 알리는 것이다. 대구와 평창이 2011년 세계육상대회와 2014년 겨울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구성원의 역량을 결집시킨 것처럼 서울 시민들이 2010년 WDC 유치를 적극 지원하도록 디자인계가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정경원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