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학부모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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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에도 예년과 다름없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대학입시가 치러졌다. 매년 느끼는 일이지만, 아마 우리 나라처럼 대학입시가 떠들썩하게 치러지는 곳도 없을 것이다. 엿이나 찹쌀떡을 붙이고, 기도나 염불을 하며 교문 밖에서 떨고 있는 부모의 모습은 우리 나라만의 입시풍경일 것이다.
이러한 광경은 우리나라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 대학생이 될 자녀를 둔 부모로서 얼마나 바람직한 모습일까 하는 데는 의문이 든다. 자녀들의 합격에 집착하는 마음에 비해 대학생으로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이나 태도에 대한 배려가 일반적으로 너무 소홀하다고 느껴지는 까닭이다.
대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성적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적어도 어느 정도의 정신적인 성숙함이 있어야 하며, 이는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나가고 책임질 수 있는 자세를 의미한다.
대학의 분위기가 자유스러운 것도 이러한 성숙함을 전제로 한 것이다. 대학생활이란 누가 어떻게 하라고 일러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며, 학업 또한 강요되지 않는 까닭에 자발적으로 해야만 한다.
대학교수의 역할은 학생들 스스로 학문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학문의 발전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의 양성은 이렇게 자유롭고 성숙한 대학의 분위기 속에서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치 유치원생처럼 부모와 손잡고 시험장에 오고, 끝나면 기다리던 부모 품에 안겨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부모와 학생들을 볼 때 바로 이런 과보호가 요즘 흔한 대학생답지 않은 대학생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교수가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쳐 주기를 바라면서 스스로 학점관리도 못하고 때로는 시험시간도 지키지 못하는 대학생, 대학이 마치 가정의 연장인 것처럼 아무 일에나 사정하고 떼를 쓰는 대학생, 요구와 주장만 앞세우고 책임은 질 줄 모르는 대학생, 이런 대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대학 문 앞에 다가선 자녀들에게 자신의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그들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모의 모습이 수험장 밖에서 초조히 떨며 기다리는 부모의 모습보다 더 바람직한 학부모의 모습이 아닐까. 또 시험을 치르는 자녀들에게도 그것이 더 큰 격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실한 요즈음이다. <문희경(고려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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