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돈의양」보다 금리를 따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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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작년말 이후 「시장」안정세 힘입어/내달중순 당좌대출 금리 인하추진
통화관리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돈의 양(통화량)보다는 질(금리)을 따지고 매달 통화증가율보다는 분기별 또는 연간목표(전년비 18.5% 증가)에 관심을 두는 통화정책이 눈에 띄고 있다.
최근 정부의 간접적인 「금리지도」와 통화관리에 이같은 변화가 나타난 것은 몇가지 여건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작년말이후 자금수요보다는 공급이 많아지면서 금융시장이 최근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12월 하순 열흘간 풀린 약 4조원의 재정자금이 기업들의 돈갈증을 해소하는 큰요인이 됐다.
작년 11월21일 1단계 금리자유화와 함께 단자업계 중개어음시장이 개인투자자에게 열린 것도 기업들의 자금숨통을 터 주는데 적잖은 도움을 줬다. 기업들이 발행한 어음을 실세금리대로 개인매입자에게 연결해주는 이 시장에서 대기업들이 조달한 돈은 1조7천억원에 이른다. 중개어음시장은 특히 기업들에 필요할 땐 급전을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자금가수요현상을 진정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업자금사정이 좋아진 것은 작년 6월 1조5천억원선을 넘어섰던 하루짜리 급전인 타입대가 지금은 거의 사라진데서도 찾을 수 있다.
또 계절적으로 돈쓸일이 많지 않은 연초인데다 경기전망도 불투명해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투자규모를 줄여나가는 추세여서 시장실세금리가 하향안정세를 보이게 된 것이다.
작년말까지만 해도 연 19%선에 있던 회사채(3년만기)유통수익률이 지난 6일 19%선 아래로 하락해 18일엔 18.68%를 보였다. 단자사간 하루짜리 콜금리는 더욱 큰 폭으로 떨어져 작년말 18.9%에서 지난 4일 15%대로,이틀후엔 14%대로,그리고 17일엔 13%대로 접어들었다.
올들어 실세금리가 이같이 떨어지는 것과 때를 맞춰 정부는 은행 및 단자사에 대해 금리인하를 강력하게 유도하겠다고 나섰다. 애당초 금리자유화를 시작하면서 시중은행들은 금리변동요인이 생기면 3개월마다 한번씩 금리를 조정하겠다고 밝혔었고,중개어음시장에서 단자사들은 시장금리대로 기업과 고객을 단순히 연결시켜주는 역할만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시장전면에 나선 것은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금리를 내리지 않을 소지가 많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부의 개입배경에는 동시에 기업들이 이자부담가중을 호소하고 있으며,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총선거전에 정부의 「실적」을 쌓기 위해서는 「금리자유화」의 모양새를 어느정도 구긴다 하더라도 이대로 방관하지는 않겠다는 정치·경제적의도가 짙게 깔려있다.
어쨌든 정부가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고 실제로 인하요인도 생김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인하작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설 이후인 내달중순께부터 당좌대출금리를 지금보다 0.25∼0.5%포인트 낮추는 방안을 마련중이다. 단자사들은 이미 지난 18일부터 18.5%이내의 기업어음만 중개하고 있다. 금융기관간 여유자금을 주고 받는 콜시장에서도 낮은 금리의 자금부터 먼저 거래가 이루어짐으로써 정부의지가 반영되고 있다.
문제는 이달 25일까지 2조원규모의 부가세납부가 대기하고 있고 월말엔 설 자금수요가 이어져 금리안정세에 위험변수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애써 잡힌 금리고삐가 다시 오름세를 탈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화증가율보다는 금리가 더 중시되는 최근의 정책흐름으로 볼때 당분간 실세금리는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시중에 돈이 남아 도는데도 재무부나 한은 어느쪽도 금리상승을 유발했다는 책임문제를 우려해 통화채발행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이는 금리가 오를 조짐이 보이면 돈을 더 풀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러나 이같은 「신축적인 통화관리」가 선거와 맞물려 물가불안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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