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도 일군위안소/17∼20세/50평 건물에 20여명 수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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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당시 도청직원 증언
【대구=김선왕기자】 일제시대 일본공군부대의 위안소가 대구시 검소동 984(당시 경북 달성군 동촌면 검소동)일대 50평규모의 목조 2층건물에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경북도청 근로동원과 원호계에 근무했던 유모씨(73·대구시 검소동)가 18일 직접 증언함에 따라 그동안 추정만 되었던 국내의 위안소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여자정신대원 20여명으로 구성된 위안소는 현재 대구시 검사동 동촌파출소 동쪽지점으로 50평규모의 2층 목조건물을 개조하여 위안소로 사용했다』는 유씨는 『위안부의 대부분이 제주도와 전라도에서 끌려온 17∼20세전후의 처녀였다』고 말했다.
이 위안소가 생긴 것은 태평양전쟁말기인 1944년 10월 북간도 방면에서 후퇴해온 3만여명의 하야부사 전투비행대가 동촌비행장에 둔하면서 당시 철공소였던 일대를 강제로 접수,위안소를 만들었으며 입구에는 무장군인 2명이 경비를 맡고 있었다고 한다.
위안부들이 평소에는 군트럭을 타고 부대를 방문하는 것 같았다는 유씨는 『위안소앞에는 토·일요일에는 군인들이 길게 줄을 서서 몇시간씩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군인들은 위안소를 입학할때는 가로 1.8㎝,세로 6㎝크기의 위안권을 사용했고 위안권 전면에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위안소는 해방과 더불어 동촌지역 청년들이 조직한 동촌청년자위대가 45년 8월21일 폐쇄됐으며 폐쇄직전까지도 일본군인들이 사용했다고 유씨는 밝혔다.
당시 자위대단장을 맡았던 유씨는 『위안소가 폐쇄된후 끌려온 정신대원들을 면담했으나 「제발 더이상 묻지 말아달라」「고향으로만 보내달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해 그 애절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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