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아시아 통화 절상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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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20~30년대를 휩쓸던 통화절하 광풍은 국제사회에서 '나만 살고 보자'식의 극단적인 보호주의 정책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국제통화기금(IMF)의 창설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IMF는 그 헌장에 모든 회원국이 부당한 환율 조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못박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무엇이 환율 조작이냐'하는 것이다. 특히 이 문제는 중국의 위안(元)화 환율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환율 조작 문제는 한국에도 '강 건너 불'이 결코 아니다. 중국의 위안화 환율 문제는 한국의 국제경쟁력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참고로 한국은 1980년대 후반 미국에 의해 '환율 조작국'으로 분류된 바 있다.

환율 조작이 성립하려면 세 가지 요인을 갖춰야 한다. 첫째, 정부의 장기적이고 대규모적인 환율시장 개입이다. IMF의 규정에 따르면 각국은 고정환율제.변동환율제 등 폭넓은 환율체계를 선택할 수 있다. 또 각국 정부는 환율시장의 교란을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특별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이고 대규모적으로 환율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특정한 목적'이란 불공정한 환율을 일컫는다. 중국 위안화의 경우 지난 2년간 특정한 목적을 위해 대규모적이고 장기적인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

둘째, 한 국가가 특정한 환율을 고정시켰다고 해서 환율 조작 혐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환율이 고정됐다는 점이 아니라 무역가중치 등이 감안된 해당국가의 환율이 '진짜'인가 여부다. 예컨대 중국 위안화의 경우 환율은 지난 8년간 '8.3위안=1달러' 환율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지난 20개월간 줄곧 하락세를 보였다. 따라서 중국 위안화의 가치도 동반 하락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 중국은 이 기간에 상당한 무역흑자와 외환보유액 증가를 기록했다. 상당한 외환보유액 증가는 환율 절상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 환율을 절상하지 않고 있는 것은 효과적인 환율 조정을 방해하는 행위에 해당된다.

셋째, 환율 조작 여부에 대한 판정이 비정치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하는 것은 물론 IMF가 해당 내용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어야 한다. 만일 이 같은 중립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환율 조작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쌍무(雙務)적 채널에서 다뤄질 것이다.

불행하게도 IMF는 이 분야에서 그리 좋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IMF가 환율 조작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해당국가에 특사를 파견한 경우는 딱 2개국(한국.스웨덴)뿐이다. 중국 위안화의 경우 IMF는 환율 조정의 타이밍은 해당 정부의 소관사항이라며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IMF는 글로벌한 맥락에서 위안화의 저평가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우선 올해 5천5백억달러로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는 미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한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달러화의 절하(切下)가 불가피하다. 달러화의 절하는 한국.일본 등의 아시아 통화의 절상(切上) 요인이다. 그러나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는 중국 위안화의 절상 없이는 자국의 통화를 절대로 조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처럼 미국 달러화와 중국의 위안화, 한국의 원화, 일본의 엔화를 둘러싼 환율 문제는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국가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을 감안할 때 환율 조작 문제는 앞으로도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공정한 환율 문제는 공정한 무역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이슈다. 한국도 IMF 회원국의 일원으로 환율 조작 문제를 좀더 심각하게 생각해 대처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모리스 골드스타인 국제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정리= 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