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선』 <강남구 역삼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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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도회의 세파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고향의 맛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어린 시절 어머님이 차려 주신 정갈한 밥상 위에 놓인 묵은 조선 간장의 맛인데, 문득문득 그 맛이 생각날 때 나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 바로 화선 (서울 강남구 역삼동 853의85, 전화 (554)3995)이라는 한정식 집이다.
이 집과의 즐거운 만남은 5년 전 가까운 분들과의 저녁 식사를 위해 특허청 뒷골목에 있던 신라촌이라는 곳을 들렀을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그 집이 옥호를 바꾸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지금까지도 그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이 집 음식의 담박한 맛의 근원은 아무래도 주인 곽향순씨 (57)의 솜씨와 정성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아주머니의 집안은 외할머니가 50여년 전 온양에서 여관업을 하면서 음식 만들기를 시작한 이래 3대를 이어오며 고집스럽게 한길을 걷고 있는데, 간장 또한 그러한 옹골찬 고집과 더불어 전란의 와중에서도 내리 묵어온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맛의 깊이를 쉬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집의 별미라면 역시 된장찌개 백반인데, 황석어젓과 삼색전이 제 맛을 낸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된장에 박은 깻잎은 씹는 맛도 가위 일품이어서 항시 1인분 8천5백원이라는 음식값을 넘어서는 만족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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