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제디드 대통령 사임과 알제리 정국 전망/군부서 회교세력에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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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총선결선 무산… 군서 주도권 장악할듯
11일 샤들리 벤제디드 알제리 대통령의 돌연한 사임발표는 회교근본주의 세력의 정치주도권 장악을 우려한 알제리 군부가 치밀하게 준비한 수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헌법상 대통령의 유고시국 회의장이 임시수반직을 맡게 되어 있으나 벤제디드 대통령은 지난 5일 비밀리 국회 해산령에 서명,친회교계인 압델아지즈 벨크하뎀 국회의장 대신 압델말레크 벤하빌레스 헌법평의회의장이 임시수반을 맡도록 조치했다.
그의 사임직후 군부는 시드 아메드 고잘리 총리의 요청형식을 빌려 방송국·전화국·정부 주요시설 등에 군을 증강배치,치안을 장악했으며,조만간 벤하빌레스는 이미 군지도자들을 주축으로한 국가평의회 의원명단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회교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건 야당 회교구국전선(FIS)의 정치주도권 장악을 확인할 것으로 예상되던 오는 16일 총선 결선투표는 무산됐다.
알제리의 정치일정은 헌법대로 진행될 경우 2월말내지 3월초에 대통령 보궐선거가 실시되며,FIS가 압승한 총선 1차투표 결과는 무위로 돌아가 빨라야 오는 6월에나 총선거가 다시 실시될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이 전망했다.
벤제디드 대통령은 지난 88년 식량폭동 이후 민족해방전선(FLN)의 1당독재를 청산하고 민주화 조치의 일환으로 실시한 지난해 12월의 다당제 자유총선에서 FIS에 대패,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렸었다.
회교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건 FIS는 집권 민족해방전선에 1백88대 15의석 이라는 압승을 거둬 1백99의석을 겨루는 16일의 결선투표 실시는 28석만 획득하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FIS의 입법기구 장악을 확인하는 행사가 됐다.
벤제디드 자신의 민주개혁이 회교독재의 길을 열어준 꼴이 된 것이다.
더구나 회교세력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있는 군부가 총선중단을 요구하고 있는데다 모로코·튀니지 등 주변국가들을 비롯,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조차 이에 동조하자 벤제디드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진 것이다.
알제리의 장래를 이같은 혼미상태로 몰아간 책임의 일단은 알제리 국민 자신들에게도 있다.
국민들은 FIS의 집권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FLN의 정국운영 능력에 실망해 40%나 투표를 기권,FIS의 집권이 눈앞에 다가오자 이에 놀라 잇따라 데모행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회교국가파와 반회교국가파의 데모대결,이에 편승한 군부의 정권야욕이 어우러져 벌어지고 있는 알제리의 혼미양상은 「선거에 의한 이란화」여부에 대한 국제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이기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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