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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의 '퍼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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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 선수단을 취재하려면 인적 사항부터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영자로 표기된 북한 선수단의 명단을 받는 순간부터가 문제다. 'ㅓ'와 'ㅗ'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알 수 없다. '정민'을 영자로 표기할 때 우리라면 'Jungmin'이나 'Jeongmin'으로 표기할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Jongmin'으로 쓴다. 문제는 '종민'도 'Jongmin'으로 쓰는 점이다.

1992년 2월의 일이다. 프로축구 대우팀(현재 부산 아이파크)의 독일 전지훈련을 취재했다. 대우는 브레멘 서쪽의 조용한 도시 비펠슈테트에 머무르며 올덴부르크.뤼벡의 클럽팀과 친선경기를 했다.

'비펠슈테트 슈포르트 호텔'에는 방명록이 비치돼 있었다. 매우 두꺼웠다. 방명록을 뒤적이다 'KOREA'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날짜를 보니 2년쯤 전에 쓴 것이었다. 'Chol'로 끝나는 이름이 많았다. 만년필로 또박또박 쓴 'God save the Queen(여왕폐하 만세)'이란 엉뚱한 문장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낯익은 이름이 적잖았다. 90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한국과 경기한 북한 선수들의 이름과 많이 겹쳤다. 정말 같은 선수들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남북은 90년 대회 멤버를 중심으로 단일팀인 '코리아'팀을 만들어 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코리아팀은 8강까지 진출했다. 북한의 조인철과 최철이 골을 넣었다.

전지훈련을 하기 위해 20일 한국에 온 북한 청소년축구 선수들을 보고 15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 제주의 특급호텔에 묵고, 서귀포 강창학구장에서 훈련한다. 경비는 모두 우리 측 부담이다. 그래서 '퍼주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냉전 시대의 북한은 경기력에 자신이 없으면 국제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도 그랬다. 북한 축구가 8강에 진출한 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 한국은 북한이 두려워 지역예선을 포기했다. 북한 선수들이 어떻게 비펠슈테트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독일에는 여왕이 없다는 사실도 몰랐지만 경기력에는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북한의 태도는 90년대 들어 누그러진다. 90년 남북축구팀이 서울과 평양에서 '통일축구대회'를 한 이후 남북 스포츠 교류가 활발해졌다. 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 우승, 91년 세계청소년축구 선수권 8강 진출 등 남북단일팀의 성과도 눈부셨다.

이제 북한은 누추한 모습을 감추지 않고 국제 무대에 등장한다.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가 열리면 남북한 동시 입장이 당연한 일이 되어 간다. 모든 변화는 '어찌됐든' 남북 교류의 성과다. 그리고 그 교류는 상당 부분 퍼주기의 대가로 이뤄져 왔다. 그렇다면 퍼주기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스포츠에서의 퍼주기는 정치적 퍼주기와 다르다. 훨씬 안전하고 결과도 긍정적이다. 제주에서의 퍼주기는 북한의 청소년 선수들에게 현실을 보여 주는 교육의 기회일 수 있다. 목적이 분명하고 투명한 퍼주기라면, 굳이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다만 기왕 퍼줄 작정이면 꼭 필요한 것만 골라 제대로 퍼주었으면 좋겠다.

허진석 중앙SUNDAY 스포츠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