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믿을 수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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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결승 2국>

○ . 이창호 9단 ● . 창하오 9단

제13보

제13보(181~203)=검토실과 저쪽 복도에 기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창호의 벽'에 가로막혀 시련의 세월을 보냈던 창하오(常昊) 9단이 지금 막 고향 상하이에서 이창호 9단을 격파하고 있다는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창호의 꾸준한 추격이 긴장감을 더하고 있었다. 중국 측 검토진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창하오의 부인과 어머니도 초조한 모습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한 판을 사이에 두고 한국과 중국의 바둑사가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총감독 마샤오춘(馬曉春) 9단은 결과를 알고 있다는 듯 특유의 냉소 섞인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197은 두터운 수. 크기로 따지면 198이 낫지만 창하오는 마루가 꺼질세라 조심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때 반집 승부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의 추격은 끝내 무위로 돌아갔고 막판에 오히려 차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289수 만에 종료되어 계가해보니 흑의 3집반 승리. 창하오가 2대 0으로 이창호를 꺾고 삼성화재배를 차지한 것이다.

승부가 결정되었으나 두 사람은 잠시 침묵에 잠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창하오는 감격하고 있을까. 이창호는 어떤 느낌일까.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기자가 대국장으로 쇄도했고 곧이어 카메라 플래시가 연이어 터졌다. 그 속에서 두 기사는 복기를 시작했다.

멀리 하얼빈과 서울에서 온 이창호의 팬들이 약간은 슬픈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말을 조금 하는 중국 여기자 한 명이 "믿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누군들 믿을 수 있으랴. 수많은 영웅을 침몰시킨 세월의 강물이 지금 막 '이창호'라는 인물의 발목에서 찰랑대고 있었다. (203수 이하 생략)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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