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의 비극』(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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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891년 뉴욕.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공부하던 한 젊은 의학도가 비천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다음 할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모든 도움을 끊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고민끝에 그녀를 독극물로 살해한다.
1906년 뉴욕. 부유한 숙부의 옷공장에서 일하던 한 젊은이가 한 여공을 유혹해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의 앞에 상류집안의 딸이 나타나자 여공을 호수로 끌어내 보트를 뒤엎어 우발적 사고에 의한 익사로 가장하고 자신만 헤엄쳐 나온다.
1911년 매사추세츠의 한 시골. 한 미남 목사가 순진한 여성 교구인을 유혹,임신케 한다. 그후 케임브리지의 부유한 교회로 옮겨 상류층 여인들과 어울리게 되자 목사는 임신한 시골처녀를 약물로 살해한다.
이 세사건의 범인들은 그후 재판을 거쳐 모두 사형당했다.
신문기자출신의 시어도어 드라이서가 그중 두번째 사건을 소설화한 것이 1925년 발표된 『아메리카의 비극』(An American Tragedy)이다.
소설로도 널리 읽혔지만 이 작품은 몽고메리 크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으로 영화화(『젊은이의 양지』)되어 우리들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드라이서가 그 사건을 소설화하기로 결심한 것은 앞의 사건 범인들이 한결같이 돈·지위·환락 따위를 갈망하는 당시 미국의 가치기준에 희생된 사람들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의 제목을 당초 『신기루』라 붙였다가 『아메리카의 비극』으로 바꾸어 발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누구나 노력하면 돈과 명예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당시의 세태가 「신기루」,곧 「아메리카의 꿈」이라 한다면 주인공은 그것에 도달하기 직전 벼랑에서 굴러떨어진 비극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메리카의 꿈과 비극은 미국사회의 가치기준,도덕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고,헛되고 무모한 「꿈」이 뜻하지않은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한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아메리카의 꿈은 무엇이고 비극은 무엇인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꿈도,,비극도 그 색깔이 다소 엷어지기는 했을망정 탈색했거나 아주 변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순방을 바라보는 시각 가운데 『혹 몇몇 나라들이 「아메리카의 꿈」을 실현시키는 소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그런 관점에서 음미해 볼만한 요소가 전혀 없지는 않다.<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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