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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의역사를바꾼명차] 나라 구한 '파리의 택시 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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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제4군단을 프랑스로 진격시켰다. 독일군은 벨기에를 쉽게 무너뜨리고 파리에서 동쪽으로 150km 지점에 있는 마른강까지 일사천리로 몰려왔다. 파리는 독일군의 공세에 밀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마른 국경을 수비하던 몽리 장군의 프랑스 제6군단은 중과부적으로 독일군에 밀려 후퇴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프랑스군 총사령관 조제프 조플 장군은 전선에 병력을 급파하기 위해 파리에 1만2000명의 보병을 집결시켰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이 많은 병력을 적군 몰래 마른 전선으로 수송하는 것이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다. 기차로는 6000명밖에 실어나를 수 없는 데다 속도가 느려 하룻밤이 꼬박 걸렸기 때문이다.

병력 수송 문제로 골치를 앓던 조플 장군에게 파리 방위군 사령관 조제프 갈리에니 장군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기차보다 빠른 자동차로 6000명의 병력을 옮기자는 것이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특공대를 최대한 빨리 급파해 기습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프랑스군에는 이 많은 병력을 수송할 자동차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대의 기동력은 말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리에니 장군은 즉시 징발대를 편성해 파리 시내에 투입시켰다. 징발대는 위급상황을 호소하고 택시들에 도움을 청했다. 이 소식을 들은 파리시내 택시(사진) 650대가 금방 모여들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국민적 결의였다. 650대의 택시는 각각 5명의 보병과 무기.탄약을 싣고 최고 속력으로 마른강까지 두 번씩 왕복해 하룻밤 사이에 6500명을 전선으로 신속하게 실어날랐다. 느긋하게 있던 독일군은 기습적인 프랑스의 병력 투입에 무너졌고 파리는 무사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택시부대를 맞는 파리 시민의 열광적인 환영은 파리의 하늘을 진동시켰다. 파리 시민은 이렇게 나라를 구한 택시들을 '파리의 택시부대' 또는 '마른의 택시'라 불렀고, 세계대전사에 길이 남는 명물이 되었다. 당시 택시부대 650대 중 70%가 르노 자동차였다. 이 택시들은 수송작전을 성공시킨 공로로 미터기에 나온 요금의 6배와 보너스까지 받았다. 이때부터 자동차는 전장에서 속전속결을 위한 필수 기동장비로 유럽과 미국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마른의 택시'는 군용차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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