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지 미흡한 경제운용계획(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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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26일 발표한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은 정책목표의 우선순위를 매기는데 있어서는 수긍할만한 판단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성장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국제수지적자와 물가상승압력을 줄이면서 제조업활성화에 주력하겠다는 것은 우리경제의 당면문제들을 감안할때 당연한 선택이라고 봐야 옳다.
성장보다 안정을 강조한 방향설정에 따라 성장목표는 금년실적치보다 낮은 7%로,경상수지적자는 올해보다 10억달러가량 줄어든 80억달러로,그리고 소비자물가 억제목표는 9%이내로 각각 잡혀졌다. 이러한 목표수치의 구성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성장률을 현저하게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안정과 국제수지개선에서 거둬들일 보상이 별로 크지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경제가 그만큼 심각한 구조적 어려움에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새해 경제운용계획은 정책 목표들의 달성에 필요한 여러가지 바람직한 정책수단들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안정화 의지를 의심케 할만한 대목들이 여기저기 산견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낮춰 잡고도 통화증가율을 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대목이다.
물가와 국제수지개선 사이에 존재하는 정책효과의 상충성에 대한 고려가 불충분하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예컨대 환율상승은 수지개선에는 도움이 되지만 물가에는 부담을 주며 수출확대와 제조업 활성화를 위한 금융지원도 같은 효과를 지니는 정책수단들이다. 서로 충돌하는 정책효과들을 어떻게 조정할 것이며 이 경우 물가와 수지개선의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둘것인가 하는 입장정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작년말에도 7%의 안정성장과 물가억제를 위주로 한 금년도 경제운용계획을 짰지만 이 계획이 여지없이 빗나가 버렸던 경위를 돌이켜 보면 새해 목표역시 불발로 끝날지도 모른나는 걱정을 씻어내기 어렵다.
새해계획의 실천방안들은 이런 걱정을 덜어주기에는 크게 미흡한 형편이다. 일례로,이번 계획이 제시한 임금억제책은 총액기준으로 5%이상의 임금을 올리는 대기업들엘 대한 불이익과 5%이내 인상기업에 대한 지원을 주된 수단으로 삼고 있으나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수년간 계속돼온 정부의 한자리수 임금인상률정책이 실패로 끝났던 사실도 그같은 의문을 증폭시킨다.
금년의 경제운용계획이 무리한 주택건설의 강행을 낳은 선거공약에의 집착으로 말미암아 심하게 뒤틀려 버린 사실을 감안할때 지금 온 국민이 우려하고 있는 내년 선거행사들의 경제적 부작용을 최대한으로 줄이겠다는 다짐이 경제운용 계획의 서두에 포함됐더라면 정부의 정책의지에 대한 신뢰를 조금은 더 크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92년은 경제적 치적이라고는 별로 내놓을 것이 없는 6공정부 임기의 마지막 해이며 따라서 그동안 경제난을 계속 가중시켜온 정책실패를 다소라도 만회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라는 자성과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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