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제도권 대립구도 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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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올해 미술계는 그 어느해보다 안팎으로 큰 변화를 겪었고 시끄러운 사건도 많았다. 각종 전시회의 폭증과 해외교류의 본격화등으로 외형적인 성장을 보였으며 80년대를 휩쓸었던 민중대 제도권의 대립구도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또 가짜·표절사건과 전시회의 왜곡·축소사건등으로 미술계가 얼룩졌던 한해였다. 우선 올해부터 해외미술품 수입이 완전 개방됨에 따라 유명 외국작가전이 러시를 이뤘고 이에 대응하듯 국내작가의 해외진출도 활발했다. 외국화랑(프랑스의 세피아화랑)이 사상 처음으로 국내에 진출했고 외국작가전도 동안의 미국·프랑스 일변도에서 벗어나 독일·이탈리아·유고등으로 다변화됐다.
샘 프랜시스·프랭크 스텔라·앤디 워홀·조제프 보이스등 세계현대미술계의 거장들이 처음으로 본격 소개되기도 했다.
반면 외국의 미술관·화랑들이 앞다투어 한국작가를 초대하거나 전속계약했다.
이 가운데 가장 획기적인 일은 영국의 세계정상급 현대미술관인 테이트 갤러리가 한국작가 6명을 초대, 내년4월 대규모 초대전 「자연과 함께」를 열기로 한 것이다.
이는 우리 현대미술이 세계적으로 작품수준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서양화가 이두직씨가 뉴욕의 브루스터화랑에, 조부수씨가 네카미술관에, 전병현씨가 스웨덴 웨터링화랑에 각각 전속화가로 스카우트됐다.
이와 함께 한국의 고미술품이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에서 비싼 값에 팔리면서 각광 받기 시작했다.
또 박물관법이 개정됨으로써 새로운 미술관을 손쉽게 설립할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기도 했다.
올해는 각종 그룹전과 개인전이 3천3백여회나 열려 지난해보다 5백여회나 넘는 폭증현상을 보였으나 수준면에서는 빈곤과 획일화 현상이 여전했다.
그러나 특히 주목됐던 흐름과 양상은 80년대를 통해 팽팽히 맞섰던 소위 제도권대 민중권 미술간의 대립구도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같은 현상은 주로 평론가들에 의한 기획전을 통해 나타났다. 「전환시대미술의 지평전」 「동향과 전망전」「혼돈의 숲에서전」등은 이념·계파간의 구분을 넘어선 새로운 연합전들이었다.
민중미술의 두드러진 퇴조와 함께 민중작가들은 상업화랑에 진출했고 모더니즘작가들은 탈 장르현상을 보이면서 미술계는 다원주의적 경향이 대두되었다.
미술평론가 윤진섭씨는 『제도·민중권의 이같은 변화는 국내화단의 구조적 경직성을 푸는 신선한 전기』라고 평가했다.
올해는 특히 그 어느해보다 굵직굵직한·사건들 잇따라 화단을 떠들썩하게 했다.
연초의 대규모 가짜그림사기단 사건을 시작으로 간경자씨의 『미인도』파문, 『반아파르트헤이트신』왜곡, 미술대전 대상수상작 표절사건등으로 벌집 쑤시듯 했다.
『미인도』사건은 작가인 간씨가 국립현대미술관소장의『미인도』가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일기 시작, 감정결과 진품임에 틀림없다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화방협회 감정위원회측과 팽팽한 대결을 벌였다.
이 사건은「과학적 분석」까지 앞세운 국립현대미술관측의 「판정승」으로 끝난 듯 했으나 『작품은 작가가 가장 잘 알수있다』는 강력한 반론이 여전히 제기되어 있다.
지난 4월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열렸던 『반아파르트헤이트전』(반인종차별전)은 전시회를 유치한 예술의 전당측이 전시회 명칭을 『국제미술전』으로 바꾸고 출품작가운데 35점을 「전시장 부족」과 「잔혹성」등을 이유로 제외시키는등 왜곡·축소시킴으로써 미술계, 특히 민중미술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미술계는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대한민국미술대전 양화부문 대상수상작『또 다른 꿈』의 표절사건으로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표절사실을 놓고 심사위원회는「현대미술의 경향」등을 이유로 내세워 대부분의 미술인들을 경악시켰으며 『미술대전』존립자체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시켰다.<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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