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산책 (30) 브라질 대합실형 정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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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출퇴근 시간은 늘 혼잡합니다. 특히 버스정류장 주변은 더합니다. 보도에서는 행인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부딪치고, 갓길에 주정차하려는 차량과 버스가 엉키는 일도 벌어집니다.

서울시가 도입한 '버스중앙차로제'는 이런 혼잡을 줄여보기 위한 노력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제도 시행 후 버스의 운행 시간과 일반 차로의 속도는 향상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중앙차로제는 버스정류장(左)을 도로 중앙에 설치해 보행자와 버스 이용객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분리했습니다. 대기시간이 줄어들자 버스 이용객은 늘어났고, 행인들은 더욱 여유있게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에 대한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버스 이용객과 택시, 승용차 이용자의 반응도 엇갈립니다. 또 차도 중앙에서 대기하는 버스 이용객들이 차량의 매연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생태도시로 잘 알려진 브라질의 쿠리치바는 편리한 교통 체계로 대중교통 개선의 모범사례로 손꼽힙니다. 쿠리치바는 지난 3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버스 유형을 다양하게 하고 환승 체계를 정비함으로써 '땅 위의 지하철'이라 불리는 혁신적인 버스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특히 대합실형 버스정류장(右)은 들어가면서 미리 요금을 내게 돼 있어 승객들의 탑승시간을 크게 단축시켰습니다. 버스정류장의 높이가 승강대와 수평을 이루어 일반인은 물론 장애인들까지 쉽게 타고 내릴 수 있지요. 길다란 원통형의 공간은 매연.소음은 물론 악천후로부터 승객을 보호해줍니다. 이러한 정류장 시스템 도입 이후 쿠리치바의 버스는 더 빨라졌고, 승객은 크게 늘었습니다. 자가용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도시 전체의 대기오염은 줄었고, 자전거와 걷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환경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최근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버스중앙차로제' 도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버스정류장은 버스 이용객을 위한 공간이지만 승객은 물론 보행자, 운전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간입니다. 새로운 도시질서와 체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갈등과 불편을 최소화하고, 시민 모두에게 유익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다각적이고 신중한 검토가 이뤄져야 합니다.

권영걸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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