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받는 통화관리의지/심상복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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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년에 돈을 얼마나 풀어야 할지를 놓고 재무부와 한국은행이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은이 먼저 공식의견을 냈다. 한은은 17일 내년도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통화공급 규모를 올보다 15∼19%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우리경제의 당면과제인 국제수지 적자와 물가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을 올해(작년보다 17∼18% 증가)보다 긴축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재무부는 연간 18% 「기준선」을 지키되 월별로는 일정선의 상하한폭 내에서 통화증가율이 움직이도록 하자는 생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단자사의 은행전환,금리자유화 등에 유연하게 대응하자는 것이지,통화증가율을 상한선까지 갖다 붙여 통화를 방만하게 운용하겠다는 의도가 결코 아니라고 재무부는 강조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의 통화운용결과를 보면 중심선은 간데없이 상한선이 항상 억제목표선이 돼왔으며 특히 「선거의 해」인 내년엔 그럴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것이 한은의 지적이다.
결국 양측 논란의 핵심은 통화증가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느냐,못믿느냐는 신뢰문제다.
중앙은행이 정부를 못믿는 것이다. 이처럼 불신의 골이 깊어진 책임은 양측이 나눠져야 할 것이지만 현실적인 의사결정권이 정부측에 있다고 볼때 재무부가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일반의 시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무부가 내년만큼은 기준선을 지킬 자신이 선다면 한은을 설득해 합의점을 도출해 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통화증가율을 1%포인트 높게 잡느냐,낮게 잡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통화증가율 1%포인트에 따라 더 풀리고 덜 풀리는 돈이 약 8천억원이고 보면 국민경제 전체차원에서 대수롭지 않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시 관건은 정책의지다. 융통성없는 통화관리가 괜한 고금리를 야기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아온 만큼 내년부터는 비록 상·하한폭을 넓게 두더라도 통화정책의 중심(기준선)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더라도 당장 그 의지를 증명해보일 수단이 선거를 앞둔 정부엔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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