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혼적 관료집단의 해악/최철주(중앙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몇몇 기업인들이 요즘 친·인척들의 납품을 절대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년여전에는 어느 대기업에서조차 친척의 공장에서 만든 부품은 아예 사쓰지도 말라는 엄명을 내린적이 있었다.
사장의 조카라 해서,또는 사장 사모님의 막내동생이라 해서 그들이 만든 제품을 줄곧 구매해 쓰다가 하마터면 회사가 거덜날뻔 했기 때문이다. 기업주의 친척으로 부터 납품받은 부품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질이 떨어지기 십상이고 가격도 비싸 이걸 끼워넣은 완제품 자체의 경쟁력이 엉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쟁배제따른 폐해
어떤 회사 사장은 이렇게 장탄식했다. 자신이 처남을 믿고 그의 공장에서 만든 전자부품을 2년째 받아써왔는데 지난 여름부터 불량률이 부쩍 높아져 엄청난 손해를 봤으며 지금은 양쪽이 다 적자운영에 빠졌다는 설명이다. 납품하는 쪽에서는 편히 앉아서 물건을 팔수 있으니 구태여 생산성을 따지거나 기술개발에 비지땀을 흘릴 필요가 없었고 납품을 받는쪽 책임자들은 기업주의 가까운 친척이 만든 부품이라 불량품이 있다하더라도 차마 클레임조차 걸지 못했다.
내로라하는 한 기업은 기업주와 연결된 「실세」들이 하도급업체로부터 커미션을 받고서야 납품을 처리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절대적으로 경쟁이 배제된 조직의 폐해는 사기업에서 뿐만 아니라 정부조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경우 그 폐해가 「적자」라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정부의 폐해는 사회전체에 미친다.
「우리 식구·우리 패·우리사람」으로 한정된 몇몇 인사들이 주요정부 조직을 점령해 울타리를 만들고 「외풍」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데 단결된 힘을 과시해왔다. 재무부를 중심으로한 금융·증권 관련 외곽기관이 죄다 그렇고 상공부등의 산하기관 또한 그렇다. 이같은 조직은 국내외 환경의 변화를 수용하는데 더디며 부정적이고 세불리하면 자기합리화에 전념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개각시기가 가까워지고 뒤이어 있을지도 모를 관련기관장 이동을 앞두고 「패」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TK계의 누가 어디로 가고 모인사와 연줄을 대고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로 가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움직이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면 거의가 「우리패」다.
「우리패」들은 실력도 있고 경험도 많이 쌓았다.
그래서 어느때고 주요 조직의 책임자로 업무를 수행하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치자.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이 생각하는 것,행동하는 것에 이상이 나타나는데 있다.
○끼리끼리모인 「패」들
한때는 정부가 금융자율화를 추진한다고 해서 시찰단을 해외에 파견한적이 있다. 재무부관리들은 금융개방정책에 대해 아주 보수적인 일본·프랑스쪽에 전문가들을 보냈다. 그러나 경제기획원은 금융개방에 가장 앞서있는 미국·독일을 찾아 연구모델로 삼았다. 양부처의 「패」들은 마치 보수대 개혁의 전사들처럼 싸웠다.
일본을 본 관리들은 미국을 이야기하지 않았으며,미국을 분석한 사람들은 일본의 장점을 들추지 않았다. 조선 선조때 김성일은 일본이 절대로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그러나 황윤길은 일본이 곧 조선침공을 개시할 것이라고 한 조정보고서 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울타리안에 있는 「패」들의 논쟁은 불량품이나 마찬가지인 부품을 놓고 어느것이 좋으냐를 따지는 것인만큼 사실상 생산성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까운 친척끼리 모여 운영하는 기업도 그 규모가 커질수록 경쟁체제로 돌아서지 않으면 살길이 막막해진다. 능력있는 외부인사도 맞아들여 조직을 활성화시키고 변화를 수용하는 입장이어야 한다.
근친혼은 열성인자를 가진 자손의 탄생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금지돼 있다. 친척끼리의 결혼이 많은 중국의 한부락에서 저능아들이 많이 태어나 「바보마을」로 불리고 있다는 최근의 외신보도는 근친혼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한 전직 경제관료는 우리나라의 근친혼적인 경제활동이 성장 잠재력을 끌어내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발전저해 주범
관리들은 자기들 범주안에 든 인물들을 주요 직책에 앉히고 자기들끼리만 논의해 중대사안을 처리하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될 수 있는한 외부의 세력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강해 인사철을 앞두고 또 엉뚱한 음해와 잡음이 따르지 않을까 걱정된다.
「패」들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고위관계자들의 기득권과 사후 안정을 위해 고리를 이어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새 바람을 불어넣어 고리를 느슨하게나마 해두지 않으면 관료들은 여전히 현실에만 안주하게 될 것이다.<경제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