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한국혼혈아 대부|정주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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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베트남에 버려진 한국인 혼혈아들의 생활은 비참합니다. 아버지가 무책임한 한국인이였기에 이들이 겪는 시련은 혹독해요.』베트남 혼혈아가정의 어려움을 돕기위해 최근 서울을 방문한 정주섭씨 (51) 는 「따이한 2세들의 대부」 .
월남전 당시 베트남에 머물렀다 귀국해버린 한국인 남편에게 버림받은뒤 혼혈아들을 홀로 키우면서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한 베트남여인의 한국에서의 수술을 위해 잠시 귀국한 그는 『한국의 경제가 이만큼 성장했으니 이제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그들에게 선경을 써줄 때가 되지 않았느냐』 고 반문한다. 정씨는 한국경제성장의 밑받침이 월남전의 특수에서 마련됐고 베트남 여인들은 이런 과정의 「희생물」 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가 베트남에 거주하면서 한국계 혼혈아 가정을 돌보기 시작한 것은 88년말부터.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 68년 베트남에 가 호텔업을 했고 72년 사우디아라비아에 나가 10여년간 식품납품업에 종사, 88년 귀국한 정씨는 마땅한 사업거리도 없었고 때마침 월남이 개방정책을 내세워 옛터전으로 다시 찾아갔다.
그는 이곳에서 옛 동료들의 아내였던 베트남여인과 아이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면서 이들을 돕기위해 눌러앉기로 결심했다.
그는 베트남에 현재 1만여 한국계 혼혈아들(l6∼24세) 이 살고있다고 추정하고 있는데 정씨가 호치민시 레반시구에 살면서 돌보는 이지역의 혼혈아가정은 3백여곳에 이른다.
정씨는 찢어지게 가난해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든이들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기술습득이라고 판단, 90년10월부터 영어·타이프·컴퓨터·재봉을 가르치는 풍용기술학교를 이끌어왔고 최근에는 영어·한국어를 가르치는 휴먼학교도 역시 무료로 열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중소기업체들의 업무를 돌봐주는 역할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정씨는 버는 돈을 모두 학교유지와 혼혈아들을 위한 식품·옷가지·자전거등 생필품 구입에 쓰고 있다.
서울에 부인과 남매를 남겨둔채 베트남에 눌러앉아 「생이별」 을 감내하는 그는 혼혈아들의 어려움을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돌봐줘 그들에게 「빠빠」 (아빠) 로 불리고 있다.
『베트남여인들은 한국인남편을 원망하지 않으면서 대부분 재혼도 마다하고 꿋꿋하게 살고 있어요.
베트남에서 많은 돈을 번 기업체들이나 혹 죄책감을 갖고 있는 일부 남성들이 그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돕는 길을 모색해주었으면 합니다.』
정씨의 이같은 호소는 한국여자의사회(회장 박양실) 가 먼저 받아들여 지난10월 혼혈아 질병치료·위문단을 파견한데 이어 베트남여인의 심장병수술을 떠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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