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교수 사회학회장 취임연설|"마르크스 사회학 시대에 맞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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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민중사회학을 주장해온 중견사회학자인 한완상교수(서울대·사회학)가 사회학계의 대표적 보수단체인 한국사회학회 신임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진보학계의 마르크스주의적 연구풍토를 비판하며 「90년대에 맞는 새로운 사회학」개척을 촉구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교수는 12일 오전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열린 후기사회학대회의 첫순서인 신임회장취임연설에서 이례적인 장문의 취임사 「90년대 한국사회학의·진로」를 발표, 『80년대를 주도해온 사회학계의 마르크스주의적 연구방법이 90년대의 새로운 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사회주의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제기돼온 비판의 흐름과 같은 맥락이지만 진보적 성향을 보여온 학계의 대표적 중견교수에 의해 지적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교수는 『한국사회학계의 진보적 연구들이 70년대 구미중심 사회학의 한계를 극복, 학문의 질적 발전을 가져왔다』고 성과를 인정한 뒤, 『그러나 이제 진보적 사회학, 특히 정통마르크스주의사회학 자체가 새로운 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변혁성과 실천성을 강조해온 진보적 이론이 점차 경직되면서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으며, 탈냉전의 시대정신에도 적합하지 못하게되었다는 것이다. 곧 70년대가 구미이론중심인 전통사회학의 위기라면 90년대는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의 위기시대라는 것이다.
비판의 요점은 진보적 사회학연구가▲지나치게 추상화되면서 현실과 유리되어 독선적이고 배타적이 되었고▲노동계급이 변혁의 주체임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신중간계급등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타계급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으며▲계급해방등 정치운동의 과제를 학술운동차원에서 강조함으로써 과격성이 과대부각돼 학문으로서의 대중성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주의국가의 붕괴는 보다 근본적인 자기성찰을 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한교수는 『이시점에서 진보학계와 보수학계의 변증법적 대화를 통한 보다 포괄적이며 총체적인 사회학을 정립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해 『진보학계가 먼저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세가지 변신을 주장했다.
첫째, 진보학계의 인간관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경제결정론적인 계급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기에 사회심리와 문학등의 영향을 보다 포괄적으로 인정해야한다. 둘째, 따라서 연구대상도 가족·교육·종교·예술·의식활동 등으로 넓혀가야하며 계급면에서도 노동자외에 시민사회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연구방법론도 폭이 넓어져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적 방법론이 탁월한것은 사실이지만 자연론적방법론과 일상생활방법론등 미시적이고 경험론적인 연구방법도 함께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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