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핵 협력 중단'이란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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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완공이 임박한 이란 남서부 부셰르 원자력발전소를 놓고 러시아와 이란 간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9일 "러시아가 부셰르 원전에 핵연료 공급을 보류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라고 러시아가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0여 년간 지속한 이란과의 핵 협력 결과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건설 대금 지연=유엔 안보리의 요구사항을 빌미로 삼았지만 러시아의 '핵 협력 중단' 위협은 금전적인 문제가 한 원인이다. 서방의 관리들에 따르면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지난주 알리 호세이니 타시 이란 핵 협상대표에게 연료 공급 보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올해 9월로 예정된 부셰르 원전 가동시기를 2개월 정도 늦출 수밖에 없다"는 경고도 러시아 측에서 나왔다. 2월 중순 "이란이 부셰르 원전 건설 대금 2000만 달러(약 190억원)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밝힌 지 한 달 만이다. 러시아는 최후통첩을 위해 최적의 시점을 기다려 온 것이다. 유엔 안보리의 추가 대이란 핵 제재 결의안이 이번 주 통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보다 근본적인 불만사항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강행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10여 년간 부셰르 원전 건설을 지원한 배경에는 단순한 건설 대금이 아니라 핵연료 시장으로서 이란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고가의 핵연료를 자국에서 구매하지 않는다면 이란과의 '위험한' 핵 협력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많이 줄어든다. 고립될 위험에 처한 이란보다는 차라리 서방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향후 더 큰 시장을 노리겠다는 것이 러시아의 복안이다.

◆ 궁지에 몰린 이란=이란 핵협상 대표 알리 라리자니는 "재정적인 문제가 다 해결됐다"며 러시아와의 갈등을 부인하고 있다. 러시아가 그동안 원전 건설을 지원하고 국제사회에서 핵 문제에 관한 한 이란의 방패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안보리 1차 결의안의 표결이 늦어지고 제재 수위가 낮아진 것도 러시아의 영향력 덕분이었다.

핵 개발에서 러시아의 지지가 사라질 경우 이란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2차 결의안 안보리 표결을 앞두고 이번 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유엔을 찾아가 해명 연설을 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다. 2차 결의안에 '군사적 조치'라는 문구가 포함될 경우 당장에라도 항모 2척을 페르시아만에 파견한 미국이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을 수도 있다. 범아랍 일간 알하야트는 20일 "대금 연체 사태 등 양국 간의 문제는 러시아가 원하는 쪽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사태를 '이란 길들이기'로 분석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 부셰르 원전은=이란 남서부 걸프 연안에 지어지고 있는 부셰르 발전소는 이란의 첫 원전으로 발전용량은 1000㎿다. 전체 건설 비용은 8억~1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1975년 서독의 지원으로 건설이 시작됐으나 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독일이 손을 떼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80~88년 이란.이라크전 때는 폭격으로 건설된 시설이 파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95년 러시아와의 계약으로 건설이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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