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외동아이 부모 괴롭히는 '독자 괴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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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올 초 24개월 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엄마 B씨. 이런 질문, 참 '대략난감'에 '노 생큐'다. 일하면서 아이를 하나 더 갖기란 과욕이지 싶어 더 이상 낳지 않기로 했지만 확신은 없다. B씨의 고요한 가슴을 수시로 뒤흔드는 외부적 요인은 이런 질문 말고도 여러 가지다. 얼마 전 읽은 신문기사 한 구절이 좋은 예.

"(…) 과도한 온라인 게임에 빠져드는 청소년들을 살펴보면 맞벌이 부모에 외동 아이인 경우가 많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이런 경우 컴퓨터가 그들의 유일한 친구다."

외동 아이 부모의 가슴을 수시로 내려앉게 하는 '독자 괴담'은 곳곳에서 출몰한다. 부모 없는 빈집이 싫어 하루 종일 TV를 켜놓고 그 소리를 벗 삼는다는 아이, 참을성이 부족해 친구들한테 걸핏하면 화를 버럭 내는 아이 때문에 소아정신과를 찾았다는 부모…. '이기적'이라는 이유로 자기 아이를 외동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엄마들도 있단다.

최근 들은 괴담 중 하나는 상가(喪家) 버전. 역시 외동 아이를 둔 여성 C씨의 얘기다. 지인의 부친상에 갔다 빈소에서 홀로 조문객들을 맞는 외아들 상주를 보고 사람들이 이구동성 목소리를 높였단다. "형제가 없으면 부모 죽은 뒤에 혼자서 일을 치르기가 얼마나 힘들고 외롭겠어."

C씨는 갑자기 외아들 생각에 급속도로 가슴이 아파왔단다. "일하느라 잘 돌봐주지도 못했는데 죽어서까지 내가 못할 짓을 한다니 너무 미안해지는 거 있죠."

이런 엄마들은 이형호군 사건을 극화한 영화 '그놈 목소리'를 보면서도 유괴된 아이가 형제 없는 외아들이라는 점을 못내 꺼림칙해 한다. "저런 일을 당할 때 아이가 하나뿐이라면 부모의 상처가 두 배, 세 배로 커지지 않을까요?"

'아이에게는 형제가 있어야 한다'는 명제는 현 한국사회에서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그러나 젊은 부모들은 그 이데올로기를 따르자니 (물리적으로) 힘겹고, 거스르자니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사실 '자녀의 적정한 숫자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가령 외동 아이가 문제아로 클 확률이 형제 많은 집에서 문제아가 나올 확률보다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즐겁고 행복하게 외동 아이를 키우는 비결'의 지은이 패트리셔 버크먼도 "아이는 형제자매와의 경쟁관계에서 인생의 큰 교훈(경쟁의 기술이나 타협)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형제나 자매가 없더라도 그와 똑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외동 아이의 부모를 대변하기 위함이 아니니 오해 마시라. 다만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어렵게 선택을 한 후에도 여전히 괴로워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을 뿐이니.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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