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뉴욕 타임스 기자의 대당서역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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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여행의 기착지는 언제나 자신이다. 천하절경의 명승지로 떠나든, 사람들의 땀과 피가 엉켜있는 유적지로 향하든, 나그네는 자신이 출발했던 바로 그 장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영원한 이탈, 가없는 은둔이 아닌 한 말이다. 문제는 결국 자신이다.

그 자신에는 근원적 존재로서의 자아가 있을 수 있고, 혹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 있을 수 있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 자아 성찰로서의 여행과 역사 탐구로서의 여행을 보여주는 두 편의 기행서를 골랐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때로는 먼 곳을 여행해야 하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와 '대당서역기'가 만났다. 시대.장소의 차이를 뛰어넘어 동.서가 함께 했다. 현대 미국 언론을 대표하는 뉴욕 타임스의 기자가 7세기 중국 당나라 때 인도로 가서 진리를 탐구하며 '대당서역기'를 남겼던 옛 스님 현장을 찾아나선 것이다.

제목만 보면 신문 특집 기사나 르포 기사를 정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간은 전혀 그렇지 않다.

55세의 중견 언론인이 열정을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뉴욕 타임스에서 파리 편집국장.베이징 편집국장 등을 지낸 저자는 현재 서평을 맡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에 물린 그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서 현장을 나침반으로 삼았다.

"현장은 궁극의 진리를 얻기 위해 인도에 갔다. 그것만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자 하는 불교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다. 나 역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저자는 '대당서역기'의 루트를 따라 중국 시안(西安)을 출발해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고, 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파키스탄을 거쳐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다. 끝이 안 보이는 길과 바람이 거센 사막, 그리고 험준한 바위, 숱한 불교 유적 등을 순례한다.

여정 곳곳에서 현장의 체취를 더듬고, 또 그 의미를 반추하면서 1천4백년이란 간극을 잇는 다리를 놓고, 원인 모를 우울증에 시달렸던 자신을 다시 추스르는 활력을 얻는다. 일종의 구도여행인 것이다.

번스타인은 현장을 높이 평가한다.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가 부와 명예를 추구했다면 현장은 인류에 유익을 주는 지혜를 구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내 안의 시계를 되돌림으로써 젊은 시절의 신선함을 다시 회복했다"고 말한다. 물론 돌아온 곳은 뉴욕의 일터다.

하지만 예전의 그는 아니다. 쳇바퀴 도는 일상, 시간을 소모하는 책임과 의무, 지옥 같은 직장이지만 현실과 맞서는 가운데 의미가 존재한다는 실존적 지혜를 깨달은 것이다.

"젊고 패기있을 때처럼 진취적인 모험을 떠날 수 있어 행복했다. 대승리는 아니지만, 스타벅스에서 카푸치노나 한잔 마시고 있었을 시간에 나는 '대사건의 길'을 따라 시간을 초월한 사막과 산맥 위로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하늘을 보았다." 독신이었던 그가 여행에 동참했던 중국인 여인과 사랑에 빠져 가정을 꾸민 것도 엄청난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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