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투데이

모순점 많은 중국의 '화해 노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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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올해 전인대는 본격적인 '후진타오(胡錦濤) 시대'를 알렸다. 후는 지난해 천량위(陳良宇) 당시 상하이(上海)시 당서기를 부정 혐의로 몰아냄으로써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권력기반인 상하이방과의 권력투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금 당 지도부에는 그에 대항할 만한 인물이나 정치그룹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정책 면에서는 균형을 중시하는 '화해(조화) 사회 건설'을 전면에 내세웠다. 간단히 말하면 장쩌민 시대의 성장 일변도, 상하이 중시 정책 때문에 처음 발생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지역.산업.계층 간의 격차를 어떻게 줄이느냐가 올해 전인대의 주요 의제였다.

전인대 개막일에 나온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정부 공작(활동) 보고에서도 '화해'라는 키워드가 여러 차례 나왔다. 이에 따르면 2007년 계획은 ①정책의 안정.정비.철저 ②성장의 질적 향상 ③사회발전.생활개선 ④개혁.개방과 경제.정치체제 등의 개혁이다. 이는 정책 우선순위를 나타낸다. 놀랍게도 기존 경제성장 시대의 키워드였던 개혁.개방을 맨 마지막에 두고, 안정과 이를 위한 통제 강화에 주안점을 둔 내용을 앞자리를 배치했다.

보고는 특히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런 방침에 따라 정부는 경제성장률을 중국 기준으론 매우 낮은 8% 전후로 잡아 과잉투자를 경계하고 재정적자 억제를 강조했다.

중국에서는 3농(농업.농촌.농민)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다. 최근 논란이 되는 것이 토지 수용이다. 개발을 위해 농민의 토지를 지역 간부나 상부 기관이 멋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있어 농민들이 반발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법적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

올해 전인대의 하이라이트는 물권법 제정이었다. 토지사용권을 물권으로 인정하고, 양도.대출.저당권 설정 등의 행위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중국에는 아직 개인의 토지소유권이 없다. 하지만 사용권은 있으며, 이에 물권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에 따라 오랫동안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4년 헌법 개정으로 '사유재산권' 보호 조항을 신설,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법적 기초를 마련했다.

화해사회 건설의 이념에 대해선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정말로 이런 균형 노선이 실현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현재의 정책을 보면 결국엔 농업.빈곤 지역.사회보장.취업 대책.의료 등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중심이 되며, 이에 따른 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무역흑자가 일방적으로 늘어나 국제수지는 불균형이 심하다. 에너지 소비는 늘고 있지만 환경대책은 지지부진하다. 부패는 만연하고 엘리트 층의 기득권 챙기기도 심하다. 세제도 여전히 미숙하다.

둘째, 화해노선에 역행하듯 대국주의적 경향이 현저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중국 국방비는 전년 대비 17.8% 늘었고, 총액에선 일본의 방위비를 능가했다. 이로써 중국 국방비 증가율은 19년 연속 10%를 넘겼다. 게다가 중국이 공표한 국방비 액수를 진실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대국주의적 행동은 화해노선의 이념과 모순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국방비보다 빈곤층 지원 예산을 늘려야 한다. 중국이 무엇보다 서둘러야 할 것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 있게 설명하는 것, 그리고 관련 정보의 공개다.

정리=박소영 기자

고쿠분 료세이 게이오대 동아시아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