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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특유의 평등의식·경쟁심이 타워팰리스형 수직적 차별화 불러”

중앙일보

입력

▶조선시대 양반사회의 사치와 방탕을 그려낸 영화 <스캔들>의 한 장면.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 상류층 문화는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쳐오면서 허물어졌다.

한국인의 명품 선호는 난데없는 것이 아니다. 졸부적 ‘과시소비’는 계층 간의 불투명성, 특유의 평등의식의 결과물이다. 상류층들의 ‘지위소비’에 이어 젊은이들의 ‘상징소비’까지…. 한 사회학자가 우리 사회의 명품 선호 현상을 통쾌하게 해석한다.


월간중앙남과 구별되는 취향이나 소비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는 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다르시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남북전쟁 발발 이전 조지아 농장주의 딸인 스칼렛의 생활을 보면 귀족생활의 풍모가 잘 드러난다.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만들어낸 예술작품 같은 가구와 의상, 그리고 화려한 벽화로 가득 찬 저택은 보는 이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1920년대 미국에서 포디즘의 대두로 대표되는 대량생산체제가 대량소비사회를 열기 이전 전 세계의 주도적 생산체제는 다품종 소규모 주문생산이었고, 그 가장 큰 수요자는 상류층과 귀족층이었다. 18세기 프랑스 귀족사회의 사치와 방탕을 같은 시기 조선 ‘경화사족(京華士族)’의 색상으로 재현해 낸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을 보면 요부와 바람둥이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귀족 취향 면에서는 동서양이 서로 통함을 알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강제적 구별 짓기는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제였다. 조선시대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규모, 옷깃의 길이, 갓의 크기와 담뱃대의 길이에까지 제한이 있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아흔아홉 칸 이상의 저택은 지을 수 없었고, 중인이 양반과 같은 크기의 갓을 쓸 수 없었으며, 경복궁의 규모를 중국의 자금성보다 크게 할 수 없었다.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리면 ‘닫힌 지위’를 차지한 귀족들이 신분이나 혈통을 기준으로 소비영역에서까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한 것이다. 반면 ‘열린 지위’는 현대의 시장과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신분과 혈통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고 능력에 따라 얼마든 즐기고 소비할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격증과 학벌, 그리고 과시적 소비는 사실상의 ‘닫힌 지위’를 만들어내고 있다.

‘닫힌 지위’의 졸부적 ‘과시소비’

이 과정에서 전통 귀족과 구별되는 ‘유한계급(有閑階級)’의 등장을 졸부의 특성으로 설명한 것은 베블렌(Veblen)이다.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사치성 소비를 위해 가격이 비쌀수록 잘 팔리는 물건을 ‘베블렌 재화’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의 전통 귀족들은 세습된 작위(爵位)와 문장(紋章)으로, 사냥과 스포츠 등의 과시적 여가로 자신의 지위를 쉽게 드러낼 수 있었던 반면, 그러한 세습 자본을 갖지 못한 미국의 신흥 졸부들이 가장 쉽게 재력을 과시할 수 있는 방법은 소비를 통해서였다. 비싼 보석과 수영장 딸린 대저택, 캐딜락과 요트는 확실하게 지위를 드러내는 소비 대상이 됐다.

하지만 부유하고 신분이 높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자신의 목숨을 먼저 전장에 바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대표되는 도덕적 정당성으로 자신의 독자 브랜드를 만들어낸 유럽의 귀족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존경받는 귀족의 전통이 없다. 부패하고 무능한 세도정치로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끈 양반과 왕족에게 도덕적 정당성을 기대할 수 없었고, 부귀영화를 누린 귀족들은 해방 후 친일파로 손가락질 받았으며, 북한의 토지개혁에 맞선 남한의 농지개혁으로 지주층은 완전히 몰락했다.

역설적으로 한국전쟁의 포화가 남긴 헐벗고 굶주린 한국은 남미나 유럽의 국가들에 비교하면 예외적으로 평등한 출발점에서 1950년대의 산업화를 시작했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온 나라가 양반의 자손으로 뿌리 잇기를 해 버린 상황에서 특별히 상류층으로 행세할 실질적 집단이 없는 사회가 됐다.

그 결과는 놀라운 평등의식으로 드러나지만, 때로는 사소한 차이에 대해서도 질투의 형태로 분출된다. 또한 20세기 초 미국의 유한계급처럼 천박한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려는 졸부적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런던의 헤롯백화점이 일반 서민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는 가상공간처럼 존재하듯, 계급구조가 굳어진 나라들에서 명품 소비는 상류층의 전유물이다. 미국의 TV 프로그램 <리치 앤 페이머스(rich and famous)>나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 소개되는 상류층의 호사 역시 보통사람들에게는 판타지일 뿐이다.

오랜 기간 계급화가 진행된 프랑스에 대한 연구에서 부르디외는 음식·음악·미술품 등의 취향에서도 계급 간 차이가 잘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상류층은 생선회와 화이트와인을 들고 바하의 평균율을 즐긴다면, 노동계급은 고기와 붉은 포도주, 그리고 요한스트라우스의 왈츠곡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평등한 프티부르주아 사회에서 출발해 급속하게 계급구조화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계층 간 구별이 아직 선명하지 않은 경쟁사회의 양상을 강하게 띤다.

‘뽕짝’과 막걸리를 즐기고 씨름으로 신입사원과의 거리감을 좁히던 한 재벌 총수의 소박한 자기인식과, 그를 어릴 적 쌀집 점원으로 기억하는 뭇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는 이면에는 나도 그와 출발이 다르지 않았다는 자부심, 한때는 나도 그보다 나았다는 자존심, 그리고 수십 년 후 드러난 지위 차이는 재능이나 노력의 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정경유착의 몫이 컸다는 비난 등이 뒤엉켜 있다.

계층 간 구별이 선명하지 않은 사회일수록 구별 짓기를 통한 신분을 확인하고자 하는 ‘지위소비(地位消費)’의 경향이 오히려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상류층의 과소비는 중하층의 과소비와 ‘짝퉁’의 범람으로 이어진다. 물건의 용도나 쓰임새보다 자신의 지위나 기호를 드러내는 소비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명품을 사기 어려운 사람들은 짝퉁이라도 사야 한다. ‘평범해진 명품’에 입맛을 잃은 사람은 희귀하고 비싼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 자신을 차별화한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제작한 원가 8만 원짜리 시계를 수천만 원에서 무려 1억 원 가까운 값에 유력 정치인 부인, 부유층과 연예인 등에게 팔아치운 희대의 사기사건까지 터져나온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속물효과(snob effect)’라고 할 수 있다.

상품의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줄고,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늘어 많이 팔리는 것이 경제학 원론이 가르치는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그런데 비쌀수록 잘 팔리는 명품이 뜨는 이유는 ‘내재한 가치’보다 겉으로 ‘드러난 가격’을 중시하는 강한 ‘신호게임(signal game)’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신호게임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큰 상황에서 나타난다. 내면적 효용과 가치가 무시되고, 외형적 가격이 지배하는 지위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서울의 초고층 고급 아파트들은 자신의 지위를 수직적으로 과시하는 한국판 구별 짓기의 또 다른 단면이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계층 간 불투명성이 소비 차별화 불러

준거집단은 자신이 현실에서 속하고 싶고 닮고 싶어 하는 비교 대상이다. 그런데 준거집단이 자신과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현실감이 강할수록 준거집단과의 차이가 벌어질 때 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느낀다. 닭이 소 보듯, 소가 닭 보듯 하는 것이 계급사회의 현실이라면, 우리는 소가 소 보듯, 혹은 닭이 닭 보듯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차이도 큰 박탈감으로 비화할 수 있는 민감성이 존재한다. 양극화 논의가 쟁점이 된 이유도 이런 맥락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계층 간 차이가 뚜렷해지는 구조화의 과정에 본격 진입하는 시점에서 명품 선호현상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명품 선호는 핸드백이나 시계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상동구조를 가진 다양한 지위경쟁을 만들어낸다. 동질적 사회의 강한 경쟁의식이 신호게임과 결합하면 차별화된 ‘닫힌 지위’를 향한 무모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쟁의 대표적 예가 ‘8학군 증후군’이다. 명문대 입학을 위한 줄서기 경쟁은 강남의 학원가를 둘러싼 아파트 가격 상승과도 맞물려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에서 8학군 논란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적 공정성을 지탱해 온 것은 대학교육이 계층 이동의 유효하고 유일한 통로라는 ‘열린 지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열려 있던 기회의 문이 ‘아파트 가격’이라는 높은 진입장벽에 의해 닫혀 버린 것이다. 여기서 오는 분노와 좌절이 양극화 논쟁의 불을 지피는 기폭제가 되었다.

‘타워팰리스’로 대표되는 초고층 아파트의 등장은 한국판 구별 짓기의 결정판이다. 주로 수평적 공간 분리를 통해 교외로 숨어 구별 짓기를 했던 서구의 상류층에 비해, 한국의 신상류층은 우뚝 솟은 초고층 아파트에 입주해 자신의 지위를 수직적으로 과시하려 한다는 점에서 훨씬 강한 지위소비 성향을 드러낸다.

명품 선호 사회의 징후는 곳곳에 널려 있다. 시부모에 대한 존경심은 예단 값에 따라 매겨진다. 그러니 과년한 딸을 둔 부모의 한숨만 깊어진다. 수백 명을 초대하는 호화판 피로연에 아파트라도 장만해 주려면 시부모의 허리도 휘지 않을 수 없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기호와 성향을 드러내는 일은 물론 자연스러운 일이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일수록 같은 비용이 들더라도 제대로 된 식사나 여행을 위해 평소 절약하는 ‘상징소비’도 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과시형 소비는 일종의 병리현상이다.

차분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사물의 가치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제대로 된 평가 문화가 정착하는 것이 첩경이다.

이재열_서울대 교수(사회학과·사회발전연구소장)

<월간중앙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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