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대화 거부하는 의료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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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위한 소중한 시간에 우리는 수많은 환자를 두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15일 오후 서울 은평구 보건사회연구원 정문 앞.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의료법 개정 공청회를 30분 앞두고 대한의사협회.치과의사협회.한의사협회.간호조무사협회 회원 200여 명이 모였다. 정부가 입법예고 중인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행사장 주변에는 10여 개의 현수막이 걸렸다. 모두가 의료법 개정을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의약분업 왜곡하는 복지부는 할복하라" "의료법 개정되면 국민 모두 마루타 된다" 등의 섬뜩한 구호도 터져나왔다.

공청회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병원협회.간호사협회.법률 전문가 등이 참석해 의견을 밝혔다. 반대 의견도 활발하게 오갔다. 의사들과는 다른 이유로 개정안에 반대해 온 시민단체도 참석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개정안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의사들의 목소리는 공청회에 없었다. 행사 직전 입장한 장동익 의협 회장은 불참 이유를 담은 의협.치협.한의협의 공동성명서만 내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정부가 여는 공청회는 요식행위며 여기에 참여하면 들러리가 된다"는 이유였다. '불참'을 선언했던 한의사회는 자신들이 문제 삼던 유사의료행위 조항이 수정될 것으로 알려지자 뒤늦게 토론에 참석하기도 했다.

의사들은 의료법이 개정되면 규제가 강화돼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동익 의협 회장은 "의약분업 이후 정부는 번번이 의사들의 주장을 묵살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불신을 키운 것은 정부"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화를 거부하고 의사의 기본적 책무인 진료를 거부하는 건 곤란하다. 이미 의협은 정부가 의료법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 오다 최종 합의 단계에서 장외로 뛰쳐나갔다. 토론과 대화 대신 휴진과 시위만을 고집한다면 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은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