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1부] 여름 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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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림=김태헌

동생들이란 건 귀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어리기도 해서 차마 치밀어 오르는 질투를 참게 하고 그래서 두려운 존재들이라고나 할까. 동생들이 밀이나 가루처럼 한구석에 이쁘게 앉아만 있다가 내가 정 심심해서 놀아주려고 하거나 좀 안되어 보여서 누나 노릇을 하려고 할 때 그때서야 움직이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좀 귀찮아지면 다시 구석으로 가서 얌전히 앉아있었으면 좋겠다. 와우! 그렇다면 내가 요 녀석들을 엄청 이뻐할 텐데…. 아니다 동생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아빠한테 이 말을 했더니 아빠는 대번에 "난 네가 좀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한테 그 말을 했다면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너무 재밌다. 특히 너희가 다 그러면 엄마는 얼마나 홀가분하겠니? 명작이 나올지도 몰라…. 가끔 글을 쓸 때는 어찌나 신경이 예민해지는지 아마 독도에 있었다 하더라도 방 밖으로 나와 소리가 지르고 싶을 거 같거든. 그러니까 다들 조용히 해!"

형제들이란 건 좀 이상하긴 하다. 자신의 아빠나 엄마가 형제 중에서 어떤 서열이냐에 따라 심하게 차별받는다. 나 같은 경우는 아빠와 엄마가 모두 막내여서 언제나 불리하다. 늘 "어린 동생이 그러는 건데 다 큰 네가 참아야지" 하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아직 "다 크기도 전에" 지금의 동생들 나이 때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일에 대해 불평을 하면 아빠는 언제나 "그럴 리가 있나. 아빠는 똑같이 둘 다 이쁜데"라고 말했다. 내가 듣고 싶은 건 "위녕, 아빠는 실은 동생보다는 네가 훨씬 더 이뻐"라는 말이라는 걸 아빠는 정말 모를 것이다. 아니 설사 안다 해도 아빠는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공명정대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거짓임을 누구보다 아빠가 더 잘 알면서도 말이다. 엄마 같은 경우는 내가 이런 불평을 하면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맞아. 엄마의 엄마는 맏이라서 매일 엄마보고 어린 네가 언니한테 양보해야지 하는 소리를 듣고 크긴 했어. 그래서 솔직히 막내의 입장이 언제나 더 이해가 되거든. 어떻게 하니? 미안하다" 하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나로서는 엄마가 이렇게 말하고 나면 참 할 말이 없다. 물론 엄마도 그걸 노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쁜 점도 있다. 혼을 낼 때 우리더러 꼭 솔직히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물론 때로는 거짓말을 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엄마의 놀라운 눈치에 실토를 하고는 했는데, 어이가 없는 건, 실토를 했는데도 솔직해지라고 우리에게 윽박지르곤 할 때였다. 말하자면, 엄마가 원하는 대답을 듣고 싶다는 거였다.

짐들을 대충 정리하고 났는데 외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외할머니는 나만 보면 언제나 눈물을 흘리셨는데 오늘은 밝은 낯빛이었다.

"위녕, … 할머니가 선물이 있다."

외할머니는 가방에서 노트북만 한 액자를 꺼내셨다. 액자 속에서는 가느다란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자주색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세 살배기 아이가 곰 인형을 들고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아빠가 결혼하고 엄마가 당분간은 너를 못 본다고 했을 때 할머니는 엄마 몰래 이 사진을 보며 살았어. 네 호수 같은 눈동자도 만져보고 동그란 코도 만져보고…. 엄마가 보면 가슴 아플까봐 이 사진을 장롱 깊이 넣어 두었단다. 이제 이걸 꺼내는 날이 왔구나. 위녕 정말 잘 왔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먼 곳에서 나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내 사진을 들여다보며 눈과 코를 만져보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런 줄 알았다면 사춘기 시절을 그렇게 외롭게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리도 감각도 없는 지구 밖으로 혼자 내동댕이쳐져서 우주를 떠돌던 것 같은 막막함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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