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자의 맛있는골프] 쌍쌍팀과의 부킹?

중앙일보

입력

3월 들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지난 겨울은 내가 캐디 생활하면서 겪은 겨울 중에 가장 따뜻한 날씨인 것 같다.
 
매년 봄 여름 가을에 베짱이처럼 일하고 겨울에 개미처럼 돈을 썼는데…(ㅋㅋ). 올해 겨울은 시즌의 연속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틀 연속 쌍쌍 팀을 받았다.(-_-)
 
"으이구. 복도 없지. 서방도 자식도 없는 게 티켓복인들 있겠어"라며 구시렁거리며 백을 찾았다.
 
티잉 그라운드에 나가보니 남자 고객은 얼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고, 여자 고객 2명은 20대 중반(?)의 젊고 발랄한 미모의 여성들이었다.
 
제아무리 눈이 나쁜 초등학생이 볼지라도 그들은 부부 사이가 아니었다. 여자들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알코올 가게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듯하였다. 첫 홀부터 남자 고객들의 분주한 모습이 보였다.
 
레이디 티에 가서 티 꼽아주고 스탠스 방향 봐주고(집에 마눌에게 그렇게 해봐라. 아침 저녁 밥상의 반찬이 달라지지)…. 아무튼 본인의 볼보다는 상콤한 여인들의 볼에 더 관심이 많았다.
 
벌써 두 명 두 명이 편이라도 가른 듯이 쫘 악 달라붙어서 갔고, 나는 순진무구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보고도 못 본 척 해야 했다.
 
그녀들은 몇 개월 안된 비기너. 앞 팀에 젊은 남자들이 티 샷하는 걸 유심히 지켜보다가 탄성을 질렀다.
 
"우와~. 디게 잘 친다!"
 
그러다가 우리 팀 티 샷할 차례가 다가왔고, 기껏 200야드 가까이 치는 같은 팀의 늙은 아저씨를 바라보며 철없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오빠~(우웩. 환갑잔치가 얼마 안 남았을 것 같은 사람에게 오빠라니). 오빠는 거리가 왜 이렇게 안나? 오빠도 앞 팀처럼 잘 좀 쳐봐."
 
그 소리를 듣고 남자 고객은 고개를 떨구며 먼 산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만 하염없이 뱉어냈다.
 
"나도 예전엔 300야드씩 쳤어. 밤일을 하도 많이 해서 이젠 기운이 없어서 그래.(-_-'')"
 
여자들은 꺄르르르르르르. 요란하게 웃었다. 몇 홀이 지나자 부킹이 들어왔다. 쌍쌍 팀으로 나가서 부킹이 들어온 건 처음이다. 뒤 팀에 조금 젊은 아조씨들이 그녀들이 마음에 쏙 옥 들었던가 보다.
 
뒤 팀 언니가 스르르 다가와 "그녀들의 전화번호를 꼭 알아오라고 하였다"며 내게 전했다. 뒤를 돌아보니 뒤 팀 아조씨의 눈빛은 장난이 아닌 진심 어린 눈빛이었다. 예쁜 건 알아가지고선(-_-'')….
 
웬만하면 내가 중간에서 부킹 같은 거 연결 안 할라 했는데 뒤 팀에서 또다시 내게 협박 아닌 협박이 왔다.
 
"언냐. 물어봤어? 장난 아니고 진짜로 전화번호 좀 갈켜 달라구해. 알았지? 제발, 제발 부탁이야.^^ "
 
혹시라도 우리 팀 아자씨들이 눈치챌까 봐 몰래 그녀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저기요. 뒤 팀 아조씨가요 전화번호 좀 갈켜 달래여. 첫눈에 반했대여."
 
그녀들은 뒤를 쓰윽 돌아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띄우면서 양파(기준 타수의 2배의 스코어를 일컫는 은어)를 해도 펄펄 날아다녔다. 하지만 부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면 뒤 팀 진행이 그다지 빠르지도 않았기에 만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그녀들의 못내 아쉬워하는 눈빛을…. 자! 오늘의 교훈이다.
 
여자는 일단은 얼굴과 몸매가 되어야 되나 보다. 얼굴 미모가 안 되는 나는 그저 남들보다 열심히 돈이나 모으는 수밖에.(ㅋㅋ) 여러분. 다른데 쳐다보지 말고 거울을 보세여. 그리고 외치세요. "돈 많이 벌자!"라고….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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