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부 고소한 16세 소년(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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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주말이나 방학이 돌아와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일을 더욱 많이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운다고 때리고,밥많이 먹는다고 때리고 하고한날 두들겨맞기 일쑤였습니다.』
19일 오전 서울지검 남부지청 전상훈 검사는 16살짜리 소년이 편지지 4장에 꾹꾹 눌러 쓴 이모부를 상대로 한 고소장을 읽어보고 너무도 어이가 없어 한동안 할말을 잃고 말았다.
『어떤 날에는 5㎏이 넘는 쇠판을 하루종일 들고 서있게 했습니다.』
고소인 방모군(16)은 2년전 아버지가 생면부지의 여인과 재혼할때만해도 그나마 어머니가 생겼다는 기쁜 마음에 들뜨기까지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릇행상을 하며 새엄마와 함께 자주 집을 비우는 아버지때문에 방군 4남매가 가방공장을 하는 의붓이모부집으로 갈때도 『이제부터 동생들이 따뜻한 정을 맛볼 수 있겠지』하는 마음에 방군은 아버지곁을 떠나는데 선뜻 응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생활은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일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9살짜리 동생에게까지도 학교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밤 11시는 물론 새벽까지 가방에 단추와 지퍼를 다는 고된 작업을 시켰다는 것이다.
『공부를 못해 교육적인 차원에서 몇대 때렸을 뿐입니다.』
방군 4남매에게 상습적으로 폭력과 가혹행위를 일삼다 이날 구속된 의붓이모부 정동하씨(37)는 『어린애들이 거짓말을 한다』며 변명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방군의 동생(9)에게 일을 제대로 못한다며 담뱃불과 전기인두로 손등을 지졌을 뿐만 아니라 한겨울에 옷을 모두 벗긴채 물통속에 처박았던 사실이 방군남매의 진술과 상처 등을 통해 하나씩 드러났다. 그제서야 정씨는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너무 심했던 것 같다』며 고개를 푹숙인채 할말을 잃어버렸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그 나이에 직접 고소장을 써서 가져왔을까요. 같은 기성세대로서 조사에 앞서 창피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김검사의 한탄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점점 돈에 눈이 먼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혹사하는 행위가 바로 우리사회를 망치게하는 요인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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