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재 신라 삼국역사 드라마로 엮는다|K-TV 대하극 「삼국기」제작 한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전북고창읍내 우체국에서 5분가량 걷다보면 고창읍성(일명 모양성)의 이끼낀 성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성문을 들어서니 촘촘히 자라난 소나무들과 운치를 돋우는 억새풀밭을 배경으로 고풍스런 대형 야외촬영세트장이 제작진 일행을 맞았다.
KBS-TV의 대하 역사드라마 『삼국기』의 고창 제작현장이다. 1천7백평 부지에 세워진 관가·저잣거리등 43채의 각종 세트 기둥마다에는 갓 대패질한 나무내음이 배어있는 듯했다.
『삼국기』(연출 최상식·안영동)는 최초의 본격 삼국시대 드라마다. TV드라마에서 단편적으로 삼국시대의 인물이나 배경을 다루기는 했어도 이번처럼 삼국시대만을 떼어내 집중 조명하기는 처음이다.
이 드라마는 한민족의 기상과 자신감, 그리고 긍지에 초점을 맞춘다.
당의 집요한 공격에도 굴하지 않은 고구려인과 젊은 장수 연개소문의 욕망, 신라의 김춘추와 김유신의 지혜·용기, 품성한 문화를 자랑하던 백제와 계백의 의리가 극의 큰 줄기다.
연출자 최상식씨는 『고구려·백제·신라, 당, 아스카의 감춰진 역사를 웅장하게 묘사하는 일대 서사시를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대배경 못지않게 등장인물들이 묵직하다. 김유신·김춘추·계백·의자왕·연개소문등의 역할을 서인석·유인촌·유동근·길용우·조경환등이 각각 맡았다. 이 드라마의 사랑얘기를 이끌어갈 천관녀역에는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영화배우 김서라가 뽑혔다.
16일오전 촬영에 앞서 연출·연기자등 제작진이 모여 이 드라마의 성공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연기자들을 대표해 서인석씨가 축문을 읽고 큰절을 올린뒤 품안에서 1만원짜리 지폐 5장을 꺼내 돌돌말아 돼지코에 끼워넣었다.
순간 제작진·관계자와 지방유지·주민들 1백여명이 주변을 메운 장내에는 한바탕 웃음이 가득했다.
고사장 앞에서 무사를 기원하는 큰절 행렬이 이어졌고 얼마뒤 촬영이 시작됐다. KBS-2TV 『연예가중계』팀은 촬영장 주변의 뒷얘기를 또다른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장수들을 태운 말 두 필이 신명나게 달리고 관가 모퉁이에서는 술에 취한 김유신이 우연히 맞닥뜨린 상대편 장수·휘하 군졸들과 드잡이하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장면을 끝으로 오전촬영이 마감됐다.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하고 말 80필이 동원되는 대규모 촬영장면이 이날 계획됐다가 취소돼 주변 사람들을 못내 아쉽게 했다. 엑스트라 동원이 휴일 외에는 어려워 뒤로 미뤄진 것이다.
중견역사소설작가로 이 드라마의 극본을 맡은 유지종씨는 고사장면과 당초 예상보다 커다란 촬영장을 둘러본뒤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유씨는 『그간 역사드라마가 조선시대에 머물렀던게 안타까웠다』며 『이번 기회에 오랫동안 잊혀졌던 민족의 기상을 제대로 살릴 생각』이라고 밝은 모습을 보였다.
세트장에서의 제작관계자들 노력도 돋보였다. 대충 뼈대만 갖춘 고증방식을 탈피, 학계의 자문을 거쳐 기와문양·건축양식등의 옛 모습을 살리는데 힘썼다는 느낌을 주었다.
삼국시대 분위기묘사와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일본 나라(내량)에 있는 법륭사건축양식과 북한서적등 각종 문헌을 참조할 정도의 치밀함도 엿보인다.
TV역사드라마사상 최대규모로 제작되는 이 드라마는 내년4월부터 매주 1회 60분 짜리로 50차례 방송된다. 고창 야외세트장에 들인 1억8천여만원등 총 40억원의 제작비와 쟁쟁한 연기자들을 중심으로한 연기진도 볼만해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