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이산가족 판문점방문 94세 봉산출신 강용택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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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습니다. 고향땅이 바로 저 산너머인데…』.
영감과 부모형제들의 얼굴이 눈에 선해요. 하느님, 하루빨리 통일되게 해주세요…』 굳게 모아잡은 두손이 떨렸고 메마른 눈물을 훔쳐내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식을 북녘에 두고왔다는 한 할머니는 시종일관 눈물을 흘려 보는 이를 안타깝게했고 아들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는 노인도 많았다. 아예 눈을 감고 묵념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복받치는 향수를 달래는듯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18일 「남북 분단의 현장」 판문점에서 최초로 실시된 1천만 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위원장 조영식)주최 「고령이산가족 판문점방문」행사 첫날의 모습이다. 통일원이 후원한 이 행사의 총신청자 3만7천여명중 연령순으로 선발된 서울·경기지역 75세 이상 노인 7백50명 가운데 이날 첫 참가한 노인은 모두 1백4명. 이중 유난히 눈길을 끈 사람은 황해도 봉산출신으로 올해 94세의 최고령 강룡택할머니(서울면목동171의44).
지팡이를 들고 71세된 외아들 송명섭씨의 부축을 받으며 하룻동안 판문점초소와 도라전망대등을 돌아본 강할머니는 1·4후퇴때 고향땅에 남편을 비롯, 부모형제들을 남겨두고 내려왔다면서 최근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북녘의 가족들이 눈에 어른거려 잠을 설친다고 했다.
『고향에 묻히고 싶습니다. 널따란 집에 수백섬 농사를 지으며 살았어요. 출가해서는 영감을 따라 원산에서 살다가 전쟁통에 엉겁결에 배에 몸을 실었답니다』
월남당시를 희생하면 몸서리쳐진다는 강할머니는 고향에 살겠다는 남편과 가족들을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지금은 사업을 하는 아들과 손자들 덕분에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그는 대대로 장수하는 집안이긴 하지만 북녘의 형제자매들은 어쩐지 모두 죽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엔가입이다, 적십자회담이다 해서, 행여 고향땅을 밟을까 손꼽아 기다렸어요. 그러나 편지한통 주고 받을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아들을 보챘습니다. 그저 고향을 바라다만 보게해달라고…』
요즘엔 건강도 예전같지 않다는 강할머니는 북녘의 부모형제들을 위해 날마다 교회에 나가 축원하고 있다고 했다.
1천만 이산가족 재회추진위와 통일원은 18일부터 12월까지 서울·경기지역의 75세 이상 노인 7백50명의 판문점 방문행사를 계속하며 내년엔 이를 전국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또 경기도 파주군 오두산에 1백70만평 규모의 「통일동산」을 조성, 이산가족 묘원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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