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77. 굿바이, 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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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80년대 말 미국의 패션 전문 일간지인 WWD에 실었던 노라 노의 광고. 실크로 만든 원피스형 점프 수트이다.

1992년 우리나라 근로자 764만 명 중 여성 비율은 40% 정도 였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많은 여성이 크게 이바지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도 그 대열에 참여,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88년 올림픽을 치른 뒤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은 가파른 인건비 상승으로 나날이 약화됐다. 더구나 섬유.의류 수출은 쿼터제로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나마 쿼터 물량의 대부분을 대기업들이 차지하는 바람에 소량의 하이패션 제품을 수출하는 업체는 '바늘구멍'을 뚫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쿼터제를 적용받지 않는 소재인 실크.마.비스코스 등 자연섬유를 취급했다. 그러나 소재의 제한은 창작 활동을 하는 디자이너로서는 한쪽 손이 묶여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가격 경쟁을 위해 수출 봉제 기지를 미리 중국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에 이런 힘든 환경에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장의 변화였다. 세계 경제는 탈공업화.정보화 시대로 가고 있었다. 또 기성복 제조업의 발전은 의생활에 있어서 사회적 지위나 부의 표현이라는 역할을 거의 사라지게 했다. 미국에서도 작은 규모의 고급 부티크들이 서서히 문을 닫기 시작했으며, 대중적인 글로벌 의류 브랜드들이 자리를 잡아 갔다. 요즘 해외 시장에서는 'GAP''바나나 리퍼블릭''자라''H&M' 같은 브랜드가 대량 생산과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하고 있다.

텔렉스에서 팩스로, 그리고 e-메일로 발전해 가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의류 업계에 글로벌 브랜드의 성공과 세계 시장 확보를 가능케 했다. 또한 TV 위성 방송은 디자인 정보를 순식간에 전 세계로 파급시켜 패션 디자이너의 지위를 흔들고 있었다. 게다가 젊은이들의 캐주얼 패션 선호 경향도 디자이너가 디자인 창안보다는 소재 개발에 더 힘쓰게 만들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디자이너이지 기업가가 아니다.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더라도 디자이너는 어디까지나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살아남는다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옷은 반듯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 역시 그대로다. 그러나 패션 디자이너도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이해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나는 마침내 오랜 세월 이어온 미국 컬렉션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심했다. 지난 12년간 패션의 본고장인 뉴욕 7번가에서 미국 의류 시장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주문 생산의 시간 단축, 고급 의류로만 인식돼 왔던 실크 소재 제품의 대중적 보급, 실크 프린트 디자인.기술 업그레이드 등은 내 평생의 결실이다.

나는 미련 없이 뉴욕 쇼룸의 문을 닫았다. 패션업 뿐만 아니라 모든 사업은 시장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계속하다가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이치를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서울 청담동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노라 노·(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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