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감정적 대응” 추측/현대 왜 납세거부 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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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무조사 정치적 목적” 주장/「금융제재」 해제 기대하는듯/7공이후까지 시간끌기 가능성도
돈이 없어 세금을 낼 수 없다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현재로선 이렇다할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기보다 정회장의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우세하다.
우선 18일 기자회견부터가 충분한 사전검토를 거친것이 아니라 이른바 「정주영 회장식」의 저돌적이고 급작스런 회견이었음이 여러곳에서 보인다.
현대그룹 홍보책임자들은 18일 아침 출근해서야 이날의 기자회견 계획을 처음 알았다.
정회장은 일요일인 17일 자택에 있지않고 하루종일 모처에서 누군가를 만났으며 자택으로 돌아와 밤새 심사숙고끝에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오전 7시20분 회사에 출근한 정회장은 사장단회의를 긴급 소집,자신의 결심을 통고했다.
또 18일 발표된 「정회장 어투」의 해명서가 말해주듯 정회장의 결심에서부터 발표에 이르는 과정에 전문실무자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예컨대 정회장은 2백60억원의 증여세를 성실납부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은 대부분이 국세청으로부터 추징당한 것이어서 「사실확인」조차 제대로 안된 부분이 당장 눈에 띈다.
정회장의 납세거부 회견내용중 가장 관심을 끄는 내용은 『돈이 없어 세금을 낼 수 없다』는 대목이다.
주목할 점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속에서는 『주식을 팔아 세금을 납부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왔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완전히 상치되는 얘기이나 결국 그 의도는 같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증시주변에서는 현대가 주식을 팔아 세금을 납부할 경우 7백만주 가까이를 팔아야 하고 이는 주식시장을 일부 교란시키는 결과를 야기,당국으로서도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정회장이 처음부터 일관되게 당국에 보내고 있는 「메시지」는 현대에 취해지고 있는 금융상의 「제약」을 풀어달라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다.
정회장이 납세거부라는 폭탄선언을 하게된 배경에는 정회장 스스로 자신에 대한 세무조사를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도 큰 이유가 됐다.
정회장은 최근 자신이 「5백억원짜리 추도사」를 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기로는 추징세액이 8백억∼9백억원 수준이었으나 지난 10월26일 고박정희 대통령 추도식의 추도사에서 6공정부를 비판한 이후 1천3백억원대로 껑충 뛰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면승부수」를 띄운 정회장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 세법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바로 지난 1일 국세청이 발표한 1천3백61억원의 세금에는 현대중공업·현대종합제철의 불공정합병에 대한 과세가 『좀더 검토후 과세여부를 결정짓겠다』는 토를 단채 빠졌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세금은 6백억∼2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부분이 추징세액에 「추가」될 것인지 여부가 주목된다.
또 조세범 처벌법 규정의 적용여부도 매우 복잡한 「여운」으로 남겨져 있다.
포탈세액이 2억원이상일때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국세청장의 고발없이 검찰의 수사착수가 가능하다. 현재 진행중인 국회예결위에서 야당의원들은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다만 조세범 처벌법상의 범칙행위 구성요건인 「사기,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조세를 포탈한 경우」에 해당하느냐는 문제가 남을 뿐이다.
정회장이 건 승부수는 외형적으론 납세 거부지만 내막적으론 결국 「시간」이라는 해석도 있다. 행정소송이 끝나려면 보통 1∼2년이 걸리고 명성사건같은 경우는 5년이 넘게 걸렸다.
시간을 끌자고 들자면 차기정부가 아닌 차차기정부때나 결말이 날 수도 있다. 부동산값은 오르는 법이고 차라리 부동산을 압류당하는 게 재무관리측면에선 이득인지 모른다. 장영자건이 그렇다. 돈과 권력의 대결은 결국 「머리싸움」이 되고 있는 양상이다.<이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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