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자가 시집출간 서울대 최종고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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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엄정한 논리의 세계인 법을 가르치는 법학교수가 법학에서는 금기시 되는 감성의 덩어리인 시를 써모아 한권의 시집으로 펴냈다.
서울대에서 법사상사를 가르치면서 『한국법학사』등 수·많은 법학연구서를 펴내는 왕성한 연구열을 뿜어온 최종고 교수(44)가 최근 「법과시를 향한 하나의 시론」이라며, 시집 『법속에서 시속에서』를 펴냈다.
『시인이면서 법률가/법률가이면서 역사가/역사가이면서 시인/아직은 이 셋 모두 되고싶다/조금씩이나마 모두 되고싶다』 (「나는 시인인가」 중에서 )『시를 사랑합니다. 좋아서 틈틈이 써놓았다가 이번에 교수생활 10년을 맞아 한번 정리해 보고자 책으로 냈습니다.』
경북상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국민학교시절 당시 교사였던 아동문학가 신현득씨로부터 동시쓰기를 배웠다. 글쓰기와 함께 배운 시심으로 그는 항상 시를 써왔다.
바쁜 생활을 한 박자 늦춰산다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는 그는 시작을 빠듯한 일상의 여유로 즐긴다. 그는 가벼운 산행중에도, 잠든 딸의 얼굴 앞에서도 시상을 가다듬는다.
그의 시심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법에 대한 회의에서 나온다.
『법은 합리적인 것이라고/감정의 안경을 코에 걸쳐서는 안된다고/자나깨나 입방아처럼/되뇌이며 사는/가련한 법학교수(중략) 알량한 수재법학도들을/사랑하며 살아가는/나는 웃기는 합리의 「등대지기」/법학교수!』(「태리의 등대」중에서)법은 물론 중요하며, 중요하기에 그는 법을 가르치는데 일생을 바치고 있다. 하지만 빈틈없이 짜여진 법의합리성도 사실은 인간의 삶을 모두 판가름할 수 있는 만능의 척도일수는 없으며 오히려 삶을 규정하는 윤리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법학교수에게 법은 우상이지만/실은 법은 윤리의 한부분(중략) 조선시대의 선비들도/법은 사후적이요/예가 사전적이라고 간파했거늘/언제부터 우리는/법률만능주의로 바꿔었는가?(중략) 웃기지말고, 너스스로 만이라도/「법과 윤리」대로 살아라』(「법과 윤리」중에서)더욱 그로하여금 법을 회의하게 하는 것은 한국의 법풍토다. 그는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고 말한 헤겔에게 『이런 말을 하고도 마음이 편하셨나요?』라고 물으며, 『한국의 현실을 아무리 둘러보아도/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 못되고/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 없어』라고 한탄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법현실을 꼬집는다.
『치외법권?/치외법권?/아무튼 재미있는 표현/법치주의, 법의 지배 속에/오아시스처럼 신기루처럼/법없는 지역이었다니?/그 영역은 얼마나 넓은가?/대통령의 교관/국회의원(생략)』(「치외법권」중에서)『불법, 비법, 악법, 탈법…/얼마나 많은 법외법에 살고 있는가?/법밖에 있는법/그건 어떤 법이길래/법보다 오히려 끈질기게/우리를 얽어매는 법인가?』(「법외법」중에서)이같은 법에 대한 회의는 법으로 다루지 못하는 인간을 묻을수 있는 시에 대한사랑으로 전환된다. 그는 『법학자에게 시집을 주는 사회/아직은 사랑스럽다』(「내손의 시집들」중에서)라며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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