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서민 울리는 '서민 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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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기도 평촌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경비를 서는 김모(63)씨는 지난해 말 경비원에게도 최저임금제를 적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민을 위한 정권은 역시 다르다"며 기대에 부풀었다. 월 80만원 정도의 수입으로 아내와 둘이 사는 그에게 최저임금 적용으로 오르는 월급 20만원은 큰돈이다.

하지만 김씨의 이런 기대는 올 들어 산산이 부서졌다. 요즘 그는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잠도 안 온다고 한다. 경비원들의 임금을 올려 줘야 할 아파트 주민들이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아예 경비원을 해고하는 일이 속출해서다.

아파트 경비는 대부분 생활이 어려운 60대 이상 노인이 맡고 있다. 이들이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받는 월 80만원 정도의 돈은 노년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정부는 이런 경비원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올해부터 경비원에게도 최저임금제를 적용했다. 사회적 약자인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홍보도 곁들였다.

하지만 경비원에게 날아온 것은 임금 인상이 아니라 해고라는 칼바람이다. 남은 경비원도 수당 삭감 등으로 월급은 별로 오르지 않고 고용 불안만 심해졌다. 그렇다고 주민을 야박하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일산 신도시 강촌 5단지의 경우 경비원의 임금을 20만원 올리면 주민들은 관리비를 월평균 1만2000원 정도 더 부담해야 한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살림살이가 팍팍한데 연 14만원씩 관리비를 더 부담하라고 주민에게 호소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더욱이 경비원의 최저임금은 올해 일반 근로자의 70%에서 내년에는 80%로 올라가 해고 폭풍은 앞으로 더 거세질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부작용을 따져 보지 않고 '약자 보호'라는 명분에 치우쳐 일방통행식 정책을 추진한 아마추어 정권이 만들어 냈다.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자는 최저임금제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편다면서 과연 정부 관계자가 입주자 및 경비원들을 만나 실상을 파악하고 부작용을 검토했는지 묻고 싶다. 약자인 서민을 위한다고 섣불리 나서면 오히려 서민에게 독이 될 수 있다.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서민들이 원하는 것은 겉만 번지르르한 이런 포퓰리즘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속이 꽉 찬' 정책이다. 인생의 황혼기에도 하루 12시간씩 고된 일을 하는 경비원 김씨는 "경비 일을 잃으면 갈 데가 없다"면서 "월급을 올리지 않아도 좋으니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종윤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