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찰위성 군사적 이용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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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당이 고성능 정찰위성 등 위성의 군사적 이용을 합법화하는 '우주기본법안'을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아사히(朝日) 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중국의 위성 요격 성공 등 우주 공간에서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 정부는 1967년 우주조약의 '우주의 평화 이용'을 추인한 뒤 69년 국회에서 "우주의 평화 이용은 곧 '비군사적 이용'"이라고 규정했다. 85년에는 일 자위대가 이용할 수 있는 위성의 범위를 '이용이 일반화돼 있거나 그와 같은 기능을 갖는 위성'으로 제한했다.

일본은 지난달 24일 다네가시마(種子島) 우주센터에서 레이더 2호기를 발사해 400~600㎞ 상공의 궤도에 안착시켰다. 이로써 일본은 광학 위성 2기, 레이더 위성 2기를 합쳐 '위성 4기 체제' 구축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보수집위성의 해상도가 상용위성과 크게 다르지 않는 1m가량(미국은 10cm)으로 한정된 것이나, 아직까지 자위대 전용의 별도 통신위성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가 지난달 24일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H-2A 로켓에 탑재해 발사한 정보수집 위성 ‘레이더 2호’. [중앙포토]

이에 일 자민당의 우주개발촉진특명위원회는 이번 국회에 제출할 법안에서 "방위 목적의 군사 이용을 허용하고 자위대가 최첨단 전용위성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미사일 발사를 탐지하는 조기경보위성과 정찰위성을 2015년까지 도입해야 한다는 구체적 계획까지 담았다.

자민당 의원입법으로 추진되는 이 법안은 게이단렌(經團連) 등 일본 경제계도 전면 지원하고 있다. 기본법이 통과되면 자위대 전용의 정찰위성이나 통신위성 등 기존 미.일 합의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동안 일 업체들은 90년 미.일 정부 간에 '통신위성 등의 실용위성은 국제조달한다'고 규정한 합의 때문에 제대로 위성 수주에 나서지 못했다.

아사히 신문은 "기본법 통과로 일 업체들의 기술이 축적되면 해외 위성 수주도 가능해진다"며 "(일 자민당 내에는) 중국이 우주 대국으로 대두하자 과거의 원칙에 얽매여서는 경쟁에 뒤진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작 방위성은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문제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연간 2000억 엔에 이르는 미사일 방어(MD) 관련 경비 등을 정해진 방위비 안에서 꾸려나가는 것도 힘든 판에 방대한 예산을 쏟아 자체 방위용 위성을 개발하고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위대 일선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관련 징후 등의 정보는 거의 100% 미국의 정찰위성에 의존하고 있다"며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세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고성능 군사위성을 독자적으로 보유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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