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열며

국방부 인사 '문민'도 좋지만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국방부의 일부 보직 인사가 기묘하다. 홍보관리관은 여섯 달째 '겸직.직무대리' 체제다. 인사기획관은 넉 달째 공석이다.

홍보관리관은 예전의 대변인이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국방정책, 군 구조, 작전계획 등 국방부의 현안을 국민에게 정확히 설명하는 자리다.

'장군인사실'을 휘하에 둔 인사기획관은 육.해.공군 장군 인사의 흐름과 맥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두 자리 모두 국방부의 핵심 보직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빚어졌을까.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9월 홍보관리관이 중도 퇴진하자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혁신기획단 부단장이던 이용대 장군을 겸직 발령을 냈다. 그러면서 공모작업에 착수해 두 명의 후보를 선정했다. 예비역 대령 출신의 A씨는 1순위, 기자 출신의 B씨는 2순위로 중앙인사위에 심사를 요청했다. 1월에 실시된 중앙인사위 역량 평가에서 A씨는 '역량 미달'로 탈락했다. B씨만 홍보관리관 후보로 국방부에 통보됐다.

그때부터 사단이 벌어졌다. 김 장관이 중앙인사위 심사 결과를 수용치 않았다. 대변인은 국방과 관련해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자리인데 비전문가를 앉힐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곤 김 장관은 지난달 강용희 공보팀장을 홍보관리관 직무대리로 발령냈다.

국방부 직원들도 "공모제의 취지는 동의하지만 국방부의 '문민화'를 위해 과도하게 잣대를 들이댄 게 아니냐"며 "코드인사"라는 시각을 보인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탈락한 A씨는 박사학위를 받고 육사 교수를 한 뒤 합참 공보실장과 국방부 홍보기획과장 등을 지낸 사람인데 어떻게 역량 미달이냐"고 반문했다.

인사기획관은 지난해 말 후보 두 명을 뽑아 청와대에 보고했다. 후보들이 전.현직 장성이어서 중앙인사위의 역량 평가가 생략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런저런 이유로 두 명 모두 비토를 놨다고 한다.

한동안 버티던 김 장관은 지난달 다시 두 명의 후보를 선정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역시 상당한 진통을 겪다 최근에야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기획관 인사 파행을 지켜본 국방부.합참의 시각은 곱지 않다.

국방부의 일부 직원은 '고위공무원단'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대통령이 장관에게 위임한 인사권을 회수해 간다고 주장한다.

실제 고위공무원단 인사는 '해당 부처 공고→지원자 등록→중앙인사위에 추천→역량 평가→중앙인사위, 통과자 부처에 통보→부처가 수용하면 청와대에 보고→검증→청와대, 통과자 중앙인사위에 통보→중앙인사위, 부처에 통보→부처, 인사 발령' 순서를 밟아야 한다. 무려 10단계다.

국방장관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군령권(軍令權)'과 '군정권(軍政權)'을 위임받았다. 군령권은 군사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고, 군정권은 인사.예산권 등 행정권한이다. 군령권은 군정권이 뒷받침돼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국방부의 다른 관계자는 "군정권이 훼손되면 국방장관이 어떻게 군을 지휘.통제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한다.

과연 이번 인사 파문이 국방장관의 '영(令)'을 세워준 것인지 관련자들은 곱씹어봐야 한다. 국방장관이 사리사욕에 얽매여 '정실인사'를 했다면 과감하게 조치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인사 재량권을 보장해야 한다. 평소 국방장관의 지휘권을 확립해 줘야 전시에 군인들이 국가와 통수권자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의 문민화'와 '고위공무원단 설립' 취지엔 동감한다. 시대적 요청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홍보관리관과 인사기획관처럼 군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보직마저 하루아침에 명분만 갖고 바꾸려 하면 안 된다. 그럴 경우 이번처럼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아는지 궁금하다.

이철희 정치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