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2)-제86화 경성야화(67)|여운형 군중 이끌며 아침부터 만세 외쳐|육당만나 "우리 같이 일해 봅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8월15일 정오에 일왕의 항복선언이 있은 뒤부터 여운형을 중심으로한 건국준비위원회가 발족돼 즉시 새 정부 수립을 위해 활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이강국은 내게 말해주었다.
이강국은 『자, 이만하면 큰 정보 얻었지. 어서 가서 신문호외를 내요』하고 껄껄 웃었다.
옆에 서있던 최용달과 박문규는 아무말없이 그냥 빙긋 웃기만했다.
이 세 사람중에서 말 많고 떠들기 잘하는 사람은 이강국이었다.
그때 골목안이 떠들썩하고 사람이 몰려들어왔다. 몽양 여운형이 앞장서고 뒤에 군중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따라왔다.
흥분이 절정에 이른 군중들은 일제히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고 법석이었다.
여운형은 언덕위로 올라가 아래에 서있는 군중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오늘 정오를 기해 일본 통치로부터 해방됩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앞서 이강국이 이야기한대로의 총독부 정무총감과의 면담예정을 설명하였다.
여운형의 집이 언덕밑 첫째집이고, 그 다음이 공산당의 거물 홍증식의 집이고, 그 다음이 심천풍의 집이었다.
심천풍은 본명이 심야섭인데 천풍으로 더 유명했다.
소설 『상록수』의 저자 심훈의 형인 그는 방송국의 제2방송(조선어방송)과장을 지냈고 술 잘마시고 잘 떠들어대는 호걸풍의 사람이었다.
그는 육당 최남선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계동 좁은 굴목이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군중들로 꽉 차있었다.
나는 어떻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그냥 제자리에 서있는데 어깨를 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심천풍이었다.
『육당이 우리집에와 계셔….』 나는 이 말에 깜짝 놀랐다.
우이동에서 어떻게 이 새벽에 계동으로 들이닥쳤는지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기미년에 독립선언서를 쓴 사람이니 오늘날 그 독립이 실현된 마당에 먼저 내달아야 할 사람일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급히 심천풍 집으로 들어섰다. 육당은 누런 안동포 고의적삼을 입고 건넌방에 앉아있었다.
『선생님, 축하합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이렇게 인사하였다.
『에헤헤, 내가 그런 축하를 받게되었나』라고 육당은 겸연쩍게 쓴웃음을 지으면서 두손을 내저었다. 그때 여운형이 우루루 한떼를 데리고 나타났다.
『아, 육당 오셨소.』
몽양은 마루에 올라와 마중 나오는 육당과 악수를 하였다.
『자, 이렇게 되었으니 육당, 서슴지 말고 나와 우리 같이 일합시다.』 몽양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악수하는 손을 연방 쉬지 않고 흔들었다.
『괜한 말씀, 내가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 그러나 한가지 부탁은, 아직 일본군의 항복을 안받았으니 조심하셔야 하오. 일본군과의 교섭은 박석윤을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아, 그렇군요. 좋은 말씀 해주셨소. 그럼 박석윤을 곧 부르겠소.』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인사말만 나누고 헤어졌다. 따라온 사람들이 또 다른 데로 가자고 성화하며 데리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심천풍과 별 말 없이 앉아있던 육당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이따가 정오에 신문사로 갈테니 호외 한 1백장 나를 주시오.』
이렇게해서 육당은 신문사 문간에서 내가 전하는 신문 호외 1백장을 받아가지고 총총히 우이동으로 나갔다.
육당은 그 뒤로 일절 시내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 아침을 먹고 태평로에 있는 신문사로 향하였다.
계동일대만 떠들썩했지 다른데는 평소처럼 쥐죽은듯이 고요하고 아무일 없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정오에 일왕의 방송이 있으니 모두들 들으라고 반장이 반원들에게 전했지만 반장부터 그것이 무슨 방송인지 모르고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