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핵 폐기 없이 북·미 관계 수립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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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 개선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반세기간의 적대관계 해소를 위해 뉴욕에서 열렸던 1차 실무회의에서 양국은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 등 핵심 쟁점들에 대해 의견차를 좁혔다고 한다. 양국 대표들도 '유익하고 건설적인 회담'이었다고 같은 목소리를 내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북.미 관계 정상화는 한반도 안정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의 안전 보장을 체제 유지의 첩경으로 삼고, 이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하는 조치를 취해 왔다. 따라서 북.미 관계 개선 없이는 현실적으로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기 어려웠다. 과거에 있었던 남북, 북.미 간 약속이 무산된 것은 결국 여기에 기인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양국 간 적대관계가 청산되는 계기가 이번에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대목도 있다. 무엇보다 북.미 관계 정상화는 플루토늄과 HEU를 포함해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대전제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크리스토퍼 힐 국무무 차관보를 비롯한 미국 측은 이런 입장을 천명하고는 있다. 이번 실무회의가 끝난 뒤에도 힐 차관보는 "HEU가 존재하는 한 비핵화된 북한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다른 당국자는 "북한의 HEU에 대해선 '중간 단계'의 확신만 있다"며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니 미국 측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냐에 대해 의구심이 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과거 핵'에 대해 미국의 핵심 당국자들 사이에서 이렇다할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석연치 않다. 부시 정부가 외교 성과에만 너무 급급해 사태를 그르치지 않기를 바란다.

북.미 관계 개선과 북.일 접촉, 남북 회담 재개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북핵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각오하에 미국과 긴밀히 협조하라. 대북관계 진전도 북핵 해결 수위에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