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0만원짜리 과외의 교훈(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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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년만 공부하면 서울대 합격이 문제없다고 했습니다. 자기만 믿으면 된다기에 전세값 빼가며 과외비를 냈는데….』
28일 오후 서울 노원경찰서 조사계.
자칭 「서울대 출신 일류강사」란 말에 속아 매월 8백50만원씩의 과외비를 「아낌 없이」 투자했던 유모씨(40·여·유치원원장·서울 상계동)는 허망한 표정이었다.
유씨는 전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아들(18·서울 C고3)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사는 재미」의 전부일 정도였다.
그런 유씨가 지난해 8월 『서울대에 확실하게 보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는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등포 D학원에서 손꼽히는 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하성호씨(44·서울 논현동)로부터 자신에게 1년만 지도받으면 수학 만점을 받아 서울대공대에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유씨는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한과목에 1백50만원이 기본이라는 하씨 말에 유씨는 「합격만 한다면…」하는 생각에 아까운줄 몰랐다.
『기왕 하는 김에 다른 선택과목도 듣는게 확실하겠다』는 말에도 그냥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이렇게해서 유씨가 한달에 들인 과외비는 8과목에 8백50만원.
유씨는 내친김에 집에서 쉬고있던 큰아들(24)을 전문대라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올해 4월부터 월6백50만원씩 들여 「지도」를 받게 했다.
『갖고 있던 건평 4백평짜리 4층건물의 전세를 하나 둘 빼 돈을 마련하고 4천8백만원짜리 전세도 1천만원짜리 사글세로 옮기며 과외비를 충당했습니다.』
자신의 건물 4층에 「과외방」을 마련해 무료로 하씨에게 빌려주며 때때로 선물도 잊지않았다.
그러나 유씨는 하씨가 아들의 질문에 대답도 제대로 못하는데다 진도마저 제대로 맞추지 못하자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남편 신모씨(44·임대업)가 하씨에게 아들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와 비싼 강사료에 비해 「싼 강사」들로만 구성된 것을 따지다 시비끝에 폭행으로 번져 맞고소 사태를 빚는 바람에 신씨가 지난달 구속처벌돼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게 됐던 것.
『시험이 두달도 채 안남았는데 제발 아이들에게는 공부에 피해가 가지않도록 해주세요.』
돈이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과 부모의 그같은 허황된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교육의 탈을 쓴 장사꾼들. 「족집계 과외」라는 「우리시대의 희비극」이 과연 언제 막을 내릴 수 있을지 안타까웠다.<정형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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