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위안부 큰소리'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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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회의가 진행되는 도중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겨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5일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미 하원 외교위원회의 결의안이 채택되더라도 사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해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과 관련한 야당 의원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밝혔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의 결의안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 의결되더라도 내가 사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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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미 하원 청문회에서 이뤄진 증언 중 어떤 것도 확고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 관리가 집에 침입해 위안부를 데리고 간 강제성은 없었지만 업자가 사실상 강제한 것을 넓게 해석해 강제성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앞서 그는 1일 "일본군이 위안부 강제동원에 개입한 근거가 없다"고 말해 한국과 중국.미국 등에서 큰 반발을 야기했다. 그리고 나흘 뒤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같은 취지로 발언했다. AP통신은 이날 "역사학자들은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약 20만 명의 여성이 1930~40년대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다고 보고 있으며, 이런 사실은 증인과 피해자들은 물론 옛 일본군 병사들을 통해서도 입증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랭클린 에브달린 필리핀 외무장관 대행도 5일 필리핀 여성을 포함, 아시아 여성들을 종군위안부로 강제 연행한 증거가 없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맹비난했다.

일본 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는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에 의문이 간다"고 말했다. 그는 "'어쨌든 이렇다'는 식의 발언은 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불신감을 불러올 수 있다. 좀 더 자신의 이념을 확실하게 표시하고 결론을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무성의 한 관계자도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총리의 이번 발언은 아시아와 미국을 적으로 만들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조용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 내에서 이 기회에 '고노 담화'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며 "따라서 이번 총리 발언에 대해 해명할 것이냐의 문제를 놓고 각료회의에서 격론이 일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일본 관방장관은 5일 "총리의 발언에 고노 담화 내용에 반하거나 재검토를 시사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 (총리에 대한 비판은) 총리 발언에 대한 적절한 해석하에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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