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폭행 패륜아 넉넉한 집안에도 많다|이시형 고려병원 원장 신경정신과 환자 361명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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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가족들간에 저질러지는 「가정폭력」이 최근 늘고있는 상황에서 부모를 구타해 정신과에 입원하는 환자가 늘고있는 것으로 나타나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서울고려병원 이시형 박사(신경정신과)가 90년8월부터 1년간 신경정신과에 입원한 환자 3백6l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상자 3백61명 중 18명(5%)이 부모를 구타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으며 가해자중 5명이 여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19세 이하 5명 ▲20대 10명 ▲30대 2명 ▲40대 1명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어머니를 때렸으며 그중 3명은 아버지도 때렸다.
이들 대부분은 어머니가 집안에 혼자 있을 때만 구타했으며 구타의 책임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자식이 부모를 상습적으로 구타하는 사례는 결코 외국에는 없는 한국적 특성』이라며 『특히 환자는 자신의 모든 사회적 실패를 모두 부모의 책임으로 돌리는 정신질환적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18명의 환자 전원은 중·고등학교시절 입시에 실패한 뒤 직업이 없이 집안에서 무위도식하다 20대 이전에 처음으로 부모를 구타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부분 정신과에 입원할 정도의 부유한 중상류층 이었으며, 부모에 의해 강제 입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환자들은 구타의 직접적인 이유를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으로 들였으며 어머니를 「만만하다」라는 이유로 구타대상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환자들 대부분이 어머니의 과잉보호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어머니보다 강해지는 17세 전후에 구타사건이 많이 발생한다』며 『특히 환자들 모두 몸집은 어른이면서 사고방식은 어린이와 같은 점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자식들의 이런 정신적 질환을 어머니들이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조사에 따르면 구타시 어머니들 대부분이 강력히 대처하지 않고 도망을 가는 등 상황을 회피하면서 오히려 주의사람들에게 숨기려 애쓴다는 것.
특히 스스로 『맞을 깃을 했다』며 자학하는 어머니도 있었으며 심지어 맞기를 바라는 정신질환적 증세를 보인 어머니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환자 대부분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상당히 모범적이라 의사·주위사람 등 부모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증세를 보이지 않으며 부모마저도 환자의 증세를 솔직히 말하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강제로 입원한 환자대부분이 어머니에게 압력을 가해 근본적인 문제해결 없이 퇴원해버려 오히려 증세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남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이런 현상에 대해 한국적인 사회적 특성을 들었다.
핵가족화에 따라 청소년들이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 심하고 과잉충족으로 욕구불만에 대한 참을성이 결핍돼 이런 행동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또 전반적인 사회규범의 약화로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으며 학력위주의 평가로 쉽게 열등감과 좌절감에 빠지는 것도 청소년들의 정신병리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지적됐다.
여기다 한국적인 특수한 모자관계가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는 것.
한편 중앙대 이길홍 교수(신경정신과)는 『사회적 환경으로 이 같은 사례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며, 특히 불우한 가정의 자녀들의 경우 더 많은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이나 부모들이 이를 숨기고 있어 치료가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법률적으로 입건되는 「존속상해」의 경우는 이런 현상들 중 극히 일부가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현재 이런 통계가 나오기는 국내에서 처음이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 정신과 입원환자 중 4%가 부모를 구타한 청소년이란 통계가 나오자 70년대부터 존속폭행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고 지적했다. <이원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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