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회장 '상선' 경영권 강화 좌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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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경영권을 확고히 하려는 시도가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의 반대로 무산됐다. 2일 열린 현대상선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사 측이 제시한 정관 변경안이 부결됐다. 변경안은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제3자에게 배정할 수 있는 길을 좀 더 용이하게 한 것이다. 이날 주총에선 의결권 있는 주식의 96.13%(1억4715만여 주) 주주가 모였고 이 가운데 현대중공업(17.6%), 현대삼호중공업(7.87%), KCC(5.97%), 현대백화점(2.20%) 등 주요 주주와 일부 소액주주가 반대해 안건을 부결시켰다.

현대삼호중공업 측 대리인은 "정관 변경안이 기존 주주의 권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제3자 발행이 현대그룹 측의 우호 지분을 늘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됐다. 현대상선의 현 회장 측 우호 지분은 현대엘리베이터(18.72%), 케이프포춘(8.70%), 우리사주조합(4.94%), 회장 일가(3.24%) 등 총 43%로, 31% 정도인 현대중공업 측을 앞서지만 정관을 바꿀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

현대상선 측은 "이번 정관 변경은 해운시장의 흐름에 대처하기 위한 것인데 현대중공업 등 주요 주주들이 이를 반대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번 일로 현 회장이 현대그룹 경영권을 강화하는 데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가진 현대건설을 현대상선이 인수할 자금을 마련하는 데도 제동이 걸렸다.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비중은 매출 기준으로 70%에 달한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현대상선 회사채 발행과 유상증자 등을 통해 7000억원 이상을 마련하는 등 현대건설 인수 목적으로 2조5000억원 정도 비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수가액이 7조원 이상이 될 전망이어서 추가 자금 마련이 절실하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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