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핵 해법' 중동에도 적용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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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이 다자(多者)회담 테이블에서 이란.시리아와 대화를 한다. 미국은 그동안 핵 개발을 추진해 온 이란, 테러 지원국으로 낙인찍은 시리아와는 대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나쁜 행동에 대해선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이들 나라에 철저히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7일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이라크전 이후 첫 대좌=라이스 장관은 상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라크 정부가 이웃 국가들이 참여하는 확대회의를 준비 중"이라며 "이란과 시리아를 포함한 인접국과 미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기타 지역 국가 대표들이 초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국이 이번 기회에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대사급이 참석하는 첫 회의가 3월 중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열리고 이어 4월에는 장관급 회의가 개최될 것"이라며 "그때 라이스 장관이 이란.시리아 외무장관과 대좌할 것이며, 회담 장소는 터키의 이스탄불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미국이 이란.시리아와 대화를 하는 것은 (2003년 3월) 이라크전 이래 처음"이라고 밝혔다. 호샤르 제바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3월 회의는 (미국과 이란.시리아의) 긴장 완화를 위한 분위기 쇄신용"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왜 대화하나=라이스 장관은 이라크 정부의 초청으로 회의가 열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이 자발적으로 이란.시리아와 대화를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댄 바틀릿 백악관 공보고문도 미국의 입장이 달라진 게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백악관이 그간 기피해 온 외교협상의 문을 여는 뜻밖의 정책 변화(an abrupt shift in policy)"라고 분석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이란.시리아와 대화를 촉구한 이라크연구그룹의 일원이었던 레온 파네타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발표는 최근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합의와 함께 마침내 외교가 강한 무기라는 점을 부시 행정부가 깨달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라이스 장관의 발언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의회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가 1000억 달러 규모의 이라크전 추가 경비를 승인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걸 의식, 민주당의 대화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외교적 노력의 첫걸음"(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이라는 등의 좋은 반응이 나온 만큼 부시 행정부의 의도는 일단 통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관심사는 미국이 6자회담에서 북한과 회동했던 것처럼 다자의 틀에서 이란.시리아와 직접 대화를 할 것인지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란과 대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라크 안정화 방안을 논의하는 이번 회의에서 이란 핵 문제가 거론될 수도 있음을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부인하지 않았다. 회의 동안 미국과 이란의 비공식 접촉을 점치는 보도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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