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단편 릴레이 편지] 청국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올핸 유난히 비가 잦았습니다. 6월 말에 시작된 장마가 7월 한달을 넘기고 8월까지 왔으니까요. 곡식 크는 여름이 어디로 가버리고 또 알곡 여무는 가을은 짧기만 하다가 겨울이 덜컥 와버렸습니다. 이러니 논의 나락도 그 수확이 반절로 줄었고 밭의 고추와 참깨는 거두기도 전에 다 병들어 죽었습니다. 비교적 견디는 힘이 강한 콩도 올해엔 갓투(벌레)먹은 것과 덜 여문 것을 골라내면 지난해의 절반이나 될 듯싶습니다.

땅속에 든 고구마가 다 썩어서 호미질을 해봐야 망태기에 주워담을 것이 없으니 겨울 아궁이 불 앞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무얼 구워주어야 할까요? 이런 것이라도 골라서 팔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또한 서글픕니다. 하지만 어머니, 그 벌레먹은 콩일망정 한 서너되 골라서 저는 청국장을 띄웁니다. 방문을 열면 얼굴에 끼치는 그 꿈꿈한 냄새와 아궁이 불 앞의 그을린 냄비 속에 청국장을 떼어 넣고 바다에서 건져올린 생새우 한 주먹과 텃밭의 무를 삐져 넣으며 끓이시던 그 청국장 냄새가 그리워 청국장을 끓입니다. 매운 연기에 눈물 훔치시던 어머니의 그 모습이 청국장의 맛이었음을 알기에-.

박형진<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