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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66. 쇼윈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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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뉴욕의 메이시 백화점 1층에 있는 쇼윈도 15개가 모두 내가 디자인한 옷으로 채워졌다.

1979년 미국 뉴욕 맨해튼 7번가의 패션가에 '노라 노' 간판을 걸고 쇼룸을 열 준비를 했다. 마침 LA에서 공부를 마친 막내 동생 부부가 이 일에 합류, 나의 뉴욕 진출은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49년 미국에서 패션 공부를 하고 패션의 중심지 뉴욕 7번가에 정식으로 진출하는 데 30년이 걸린 셈이다.

쇼룸을 열자 뉴욕 고급 부티크의 바이어들의 주문이 쏟아졌다. 700벌이었다. 우리 사무실 팩스에는 주문서가 줄지어 들어왔다. 성공이다. 그때 내 감정을 딱히 무엇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흥분과 과연 잘 해낼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뒤섞였다.

미국 진출 때 홍보 문제는 늘 내게 충고를 아끼지 않고 도와준 장명수 기자(나중에 한국일보 사장)와 상의했다. 장 기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성의있는 홍보물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는 그의 말을 따랐다. 그리하여 컬렉션 전체의 모든 디자인을 한 장 한 장 내 손으로 그려 넣은 독특한 초청장을 제작했다.

'헨리 벤델(Henry Vendel)'이라는 최고급 부티크의 바이어는 나중에 내게 주문을 하며 이런 말을 했다.

"시즌마다 너무 많은 브랜드의 홍보물이 쏟아져 들어오니, 대충 겉봉투만 보고 곧바로 버리기가 일쑤에요. 그런데 노라 노에서 보낸 것은 너무 독특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지요."

'여왕처럼 보이려 하는데 왕의 몸값은 필요없다'는 것이 노라 노의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림 속의 고급스러운 실크 드레스를 합리적인 가격대로 만날 수 있다는 우리 아이디어가 미국 여성에게 통했던 것이다.

하루는 뉴욕 쇼룸의 우리 직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뉴욕 7번가 사거리에 있는 메이시 백화점의 1층 쇼윈도 15개가 모두 노라 노 옷으로 '도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잘 팔리면서도 백화점 바이어들이 제일 강력하게 추천하는 상품만이 1층 쇼윈도를 장식할 수 있는 것이 패션계의 상식이다. 그 쇼윈도에 걸려 있을 내 옷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렜다.

또 뉴욕 5번가 부티크에서 매장 직원이 히트작이었던 1045번 스타일을 마네킹에 입히고 있는데 어떤 신사가 들어와서는 여자친구 선물로 그 옷을 사 갔다고 했다. 그는 영화 '왕과 나'의 주인공인 배우 율 브리너였다.

문제는 두 번째 컬렉션이었다. 전문가들은 2차, 3차 컬렉션의 결과를 봐야만 7번가에서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두 번째 컬렉션을 구성했다. 이번에는 랩 드레스가 히트작이었다. 스타일 넘버는 1075번. 이 드레스 샘플을 본 바이어들은 열광했다.

헨리 벤델에 하나뿐인 쇼윈도 마네킹에 그 드레스가 입혀졌다. 이 스타일은 무려 5년 가까이 미국 시장을 누비며 전국으로 팔려 나갔다. 일명 '노라 노 드레스'라고 알려지면서 복제품도 넘쳐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나는 당당하게 뉴욕 7번가의 떠오르는 디자이너로 자리를 굳혀갔다.

노라 ·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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