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매가 15∼20% 올려야 농촌산다”(추곡 수매정책 논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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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농촌 현지 표정/품삯등 대폭 올라 경작에 어려움/쌀개방 겹쳐 추수들녘 시름 더해
본격적인 추수가 시작되면서 추곡수매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올해는 특히 산지 쌀값의 하락과 판로의 경색,농산물수입으로 인한 농민의 위기의식과 물가안정을 내세우는 정부논리가 정면으로 맞서 수매량과 가격결정에 큰 진통이 예상된다.
농촌현지의 표정과 추곡수매정책에 대한 논란을 2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주>
◇영남=경남 진양군의 거리에는 「수입쌀 막아내고 우리쌀 제값받자」는 농민회의 현수막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추곡수매 공방전이 시작된 것이다.
『한마디로 농촌은 파산지경이며 희망없는 불모의 땅이 돼가고 있습니다. 기업같으면 벌써 떠났겠지요. 공산품값은 뛰는데 쌀등 농산물값은 수입개방으로 떨어지니 버틸수가 없습니다.』
6천여평 논에서 가을걷이를 준비하던 진양군 명석면 관지리의 농민 손태기씨(43)의 첫마디다.
손씨는 『정부미 방출로 산지쌀값이 지난해 수매가보다 가마당 2만원이 낮은 기현상인데다 잘 팔리지도 않아 수매량을 크게 늘려야 그나마 위안이 될 것』이라며 『농촌품삯이 작년의 하루 1만5천원에서 3만원으로 1백% 뛰고 농기계 임대료가 30% 오른 것 등을 감안하면 수매가는 1백% 올려도 시원치 않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정부가 부채등에 허덕이는 농촌을 과연 살릴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라며 『정부는 농기계·사료·농약의 부가세(10%)라도 없애 영농원가가 절감되게 하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양군 농촌지도소 김영수 과장(47)은 『수매값보다 농가희망 전량수매에 농민주장의 무게가 실려 있는게 올해의 특징』이라며 『수매가에 대해 현재도 우리 쌀값이 국제가격의 세배이상인데 계속 올리면 외국쌀의 수입여지가 커지지 않느냐고 설득하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도 산지쌀값이 작년 수매가보다도 싸니 정부에 파는게 유리하고 그만큼 수매량확대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편 전농 경남도연맹은 이달말 군별 공천회 개최,11월 중순 농민대회개최 등으로 추곡수매에 적극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호남=『논갈이대 60만원,모심기비용 45만원,농약살포비 75만원,비료 39만원,품삯 60만원,수확비 60만원 등 3백30만원.』 6천평의 쌀농사를 짓는 전남 나주군 산포면 산재리 윤광선씨(44)가 셈해놓은 올 영농비다.
윤씨는 올해 1백70가마(80㎏들이)를 수확해 8백여만원의 수입이 예상되지만 이같은 영농비와 연말까지 갚아야할 농협융자금 3백만원 및 비료 등 농사자재값 1백만원을 빼면 남는 것이 없어 내년 농사를 위해서는 또 농협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나마 수박·배추농사에서 3백만∼4백만원의 소득이 있어 간실히 버틸 뿐이란 것이다. 그는 『시중 쌀값이 너무 낮은만큼 돈은 나눠 주더라도 희망전량을 정부가 수매하고 값도 최소 15∼20% 올려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윤씨는 특히 『수매가 결정과 수매기가가 늦어져 해마다 돈이 급한 농가들이 양곡상·정미소에 헐값에 벼를 넘기는 사태가 생기고 있다』며 『10월말께에는 수매가등을 결정,시기를 앞당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추곡수매담당인 산포면 신연호 산업계장(35)은 『통일벼는 생산이 정부의 수매예시량 정도로 줄어 문제가 없지만 일반벼는 정부가 확대재배를 권장해 놓고 왜 수매는 소량만 하느냐는 목소리가 작년보다 커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부=경기도 평택군 이보윤 농사계장(49)은 『정부의 물가억제정책으로 쌀값이 오를 전망이 없자 5월이후 양곡상들의 발길이 거의 끈긴데다 산지쌀값도 작년보다 가마당 1만4천원이 떨어져 농민불만이 큰 상태』라며 『조사결과 평택군 농민들은 생산량의 45%인 1백25만가마(40㎏들이) 수매를 요구하고 값도 18%이상 인상을 희망,정부의 한자리수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평택군 팽성읍 신궁1리 농민 권상근씨(57)는 『공사장에 가면 하루 7만∼8만원을 버는데 농촌에서는 허리가 휘도록 일해도 빚만 쌓이니 앞으로 누가 농사를 지으려 하겠느냐』며 『농산물 빼고는 한번 오르면 떨어지는 물가가 없는 만큼 다른 물가를 따라잡을 수 있는 선의 쌀값인상이 있어야 한다』며 20%는 올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전남 나주="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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