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소설이 인기라니…/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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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평화적 정권교체의 경험이 일천한 우리는 정권교체시기가 다가오면 이와 관련된 각양각색의 시나리오와 소문들이 무성하게 마련이다.
서울로부터 들려오는 여러소문 가운데 후계문제등 정권교체와 관련된 얘기들이 가장 많은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최근 서울에서 온 몇 사람이 6공화국의 정권교체를 다룬 한 소설이 베스트 셀러에 올라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정치의 우여곡절을 너무 많이 겪은 우리로서 또 한번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다는 이 소설의 내용들이 그럴 듯하게 들릴 수도 있다.
또 이것이 「소설」이라는 이유때문에 웃어 넘길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허무맹랑한 얘기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국민 마음 한가운데 그러한 불안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시대역행적인 발상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최근의 두 국제사건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조류를 거부하고는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소련의 보수반동세력이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최근 중미의 아이티공화국에서 불과 6개월된 민선대통령을 축출하고 군사쿠데타를 단행한 세력도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남북아메리카의 34개국으로 구성된 미주기구(OAS)가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하며 외교고립화의 경제봉쇄를 단행키로 결의하고 이것이 거부될 경우 OAS연합군에 의해 무력 진압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베이커 미국무장관도 쿠데타세력을 파락호로 비유하면서 『아이티의 쿠데타세력이나 이를 모방할 꿈을 꾸고 있는 세력들은 서반구가 민주주의방어를 위해 결속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부시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제 정변으로 권력을 잡아 이를 기정사실화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데 아직도 서울에서는 친위쿠데타 운운하는 소설이 그럴듯한 시나리오로 인기를 끌고 있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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